TV가 귀하던 70년대초.

거의 매일 밤 TV가 있는 집 안방은 동네사람들로 가득 찼다.

인기드라마나 김일선수가 나오는 프로레슬링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을사람
들로 그 집마당이 메워지던 시절이었다.

혹시 비라도 오거나 주인이 없으면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추억의 옛날.

이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따뜻한 내용의 광고 한편이 나와 눈길을
끈다.

"배경은 25년여전 어느 시골마을.

일찌감치 저녁을 끝낸 동네사람들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TV를 갖고 있는
집으로 몰려든다.

집주인은 동네사람들을 위해 TV를 대청마루에 내놓는다.

마당에는 멍석이 펴져 있고 평상도 준비돼 있다.

마당 한켠에는 모깃불이 솔솔 연기를 내고...

꾀죄죄한 옷차림의 동네아이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몇몇 개구쟁이들은 아예 담장밖 감나무위로 올라가 있다.

모두가 가슴졸이며 TV를 지켜보다 드디어 "우리편" 김일선수가 "나쁜 편"
선수의 머리를 붙잡고 몸을 뒤로 젖히면 마을사람들의 함성이 터져나온다

"박치기!".

벌렁 뒤로 넘어지는 "나쁜"선수를 보고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이 광고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의 기업이미지광고.

TV가 온 마을사람들과 함께 "또 하나의 가족"으로 자리매김하는 추억의
순간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이 광고는 종이인형애니메이션 광고로는 국내 처음이다.

광고에 나오는 인형들은 모두 12개로 인형제작비만 1억원이 들었다.

어른손 한뼘 남짓한 25cm키의 인형 하나가 8백30만원이나 되는 셈.

인형은 철심으로 기본 골격을 만든 다음 그위에 헝겊을 씌운후 다시
창호지같은 종이를 으깨어 덧씌워 만들었다.

이 종이인형들을 포함해 초가집과 담장 감나무 TV 등 배경세트를 만드는
데 모두 3억2천만원이 들었고 세트제작기간은 2개월.

광고촬영에는 3주일이 걸렸다.

광고를 만든 제일기획은 "인형을 만들때 중국인이나 일본사람 느낌이 나지
않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담당부서인 광고10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인 특유의 둥그스름한 턱과 약간
찢어진 눈매 등 전형적인 한국인 얼굴모양을 살려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지난달말부터 나가고 있는 이 광고에 대해 소비자 조사를 해보니
30~40대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무척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에따라 이번에 만든 종이인형들을 이번 광고하나로 끝내지 않고 후속광고
에도 활용할 것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세간의 평가가 좋자 내년 3~4월까지 이 광고를 내보내기로
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