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자금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외 지급보증 등의 조치가 오히려
해외차입의 걸림돌이 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단기처방으로 문제를 해결
하려 한 탓이다.

산업은행이 1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 발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먼저 국내 금융기관들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문제.

산업은행이 홍콩 런던 등 국제금융시장에서 벌인 로드쇼에서 해외투자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국제금융 담당자들은 "이들의 무관심은 지극히 당연한 것"
이라고 지적한다.

"8.25 대책으로 나온 정부 지급보증으로 한국 금융기관들도 정부 신용등급을
갖게 됐다.

산업은행과 마찬가지로 시중은행들도 정부 등급이 적용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대외신인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이자를 덜받는 산업은행이 발행한
채권보다 나중에 나올 시중은행의 채권을 사는게 유리하다"는 논리다.

결국 산업은행이 발행을 성사시키려면 투자자에게 더 나은 조건(산업은행
으로선 발행비용 상승)을 제시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발행 당시와 상황이 바뀌면 금리를 인상하는 스텝업방식을 적용하자는 등의
요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한국물의 벤치마크(기준)였던 탓에 다른 은행의 발행
조건을 더 악화시킬 개연성이 높아졌다.

산업은행의 해외차입 규모와 시기 등을 정부가 공식 발표한 것도 차입여건
악화요인으로 지적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큰 금액을 일정시일내에 조달한다고 공개한 것은
차입협상때 아무런 무기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발행비용 증가는 불가피
하다"고 말했다.

반드시 조달해야 하는 만큼 높은 금리를 요구해도 어쩔수 없을 것이란
심리가 투자자들 사이에 조성된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해서 산업은행의 조달코스트가 오르면 앞으로 발행될 국내 금융기관
들의 해외채권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국내 금융기관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한 정부의 대책은 예상
외의 "고비용"을 초래한 것으로 풀이할수 있다.

이같은 이유로 해외차입을 준비중인 몇몇 은행들은 산업은행의 이번
글로벌 본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