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수요가 많은 추석을 코앞에 두고도 꼬여만 가고 있는 금융시장을 보는
기업인들의 심정은 초조하기만 하다.

신용이 없어 돈 빌릴 방법이 없는 중소.중견기업들이 특히 그렇다.

종금사 뿐아니라 은행들도 우선 살아남기 위해 자구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
에선 추석 직전에 중소기업들의 대규모 부도사태는 불가피할 것이란 절망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추석이 지나면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

기아그룹에 대한 부도유예만료일이 29일로 예정돼 있는데 만일 그때까지도
정부 채권은행 기아그룹 등 당사자들이 해결책을 찾지 못해 부도로 결론이
나면 그야말로 "끝장"이기 때문이다.

재계의 이런 우려는 정부가 지난달 25일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내놓았는
데도 대기업그룹의 자금악화설이 꼬리를 물고 있어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게다가 환율이 극도로 흔들리고 정부가 부도유예협약의 폐지를 검토하기
시작하자 재계에는 "이러다 정말 금융공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 얼어붙은 대출창구 =기업들은 정부의 금융안정대책이 시기적으로 늦었을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 제고에 집중돼있어 기업의 자금조달에는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모그룹 관계자는 "제일은행이 최근 자구노력 차원에서 인원을 줄이면서
과거 대출사고를 일으켰던 사람을 우선 쳤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소신있게 대출을 할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대기업그룹이 이 정도면 규묘가 작은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기아 대농 진로 등 부도유예협약 대상 기업과 관련이 있는 하청중소
업체들의 경우는 추석직전까지 제대로 버틸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태일 이사는 기업은 지금 즉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든 중환자라고 전제, 금융권에 묶여있는 돈이 기업에 흘러갈수
있도록 하는 긴급 수혈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중앙은행이 신축적인 재할인 정책을 취하고 정부도
재정의 신용보증기금 출연 확대로 진성 상업어음의 재할인을 원활히 해주지
않으면 기업의 자금조달경로는 완전히 막혀 버린다"고 덧붙였다.

<> 위기설 확산 =자금수요가 많은 추석이 끼어있고 기아그룹의 부도유예
협약이 만료되는 이달이 최대의 위기가 될 것이란 것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말 시장실세금리가 상승세를 보인 것도 이미 추석자금을 마련할
만한 기업은 자금조달을 끝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아직까지 대출을 못 따낸 기업들은 더욱 초조해하고 있다.

특히 어려운 사정에 있는 대기업과 거래하고 있는 하청중소업체들은
추석자금이 아니라 "생존 자금"을 구할 길이 없어 애태우고 있다.

기아그룹 계열의 모 하청업체 사장은 정부가 부도유예방지협약의 재검토
방침을 발표하면서 자금마련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기아그룹 관련
당사자들이 제발 마지막 순간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가겠다는 자존심 싸움은
벌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하청업체들의 이같은 불안감은 최근 부도유예방지협약 대상 외에도
30대그룹내 3~4개 그룹의 자금악화설이 꼬리를 물면서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 정부 개입만이 해결책 =민간경제연구소들은 금융시장의 불안이 이처럼
계속되는 또다른 원인의 하나로 금융개혁이 지지부진한 탓을 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기관들의 채무를 보증하는 것은
대외신인도 하락을 막을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인도 제고에는 별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보단 근본적인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금융산업개편
작업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야만 대외신인도가 올라가고 동시에 우리 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이
활기를 띌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환율위기는 정부가 반드시 책임져야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세진 금융조세연구실장은 "멕시코및 태국의 외환위기는
실물경제의 침체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화에서 출발했다"며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정부의 역할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부실채권의 증가로 은행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니
만큼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통화가치의 추락을 막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의 환율문제와 관련, 김실장은 "외국인들은 한국정부의 환율방어 의지는
물론 외환보유고 확대 등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지금은 정부가 적극 개입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