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께로 예정된 이회창 신한국당대표와 경제5단체장과의 회동을
앞둔 재계의 표정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신대기업정책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 반면 정치논리로 경제를 풀어가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만만치 않다.

기대의 내용은 이렇다.

우선 이번 회동을 통해 정부의 경제정책이 "재벌 길들이기"에서 "재계
끌어안기"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집권당의 대선후보가 요청해 만든 자리인 만큼 재계에
내놓을 "선물 보따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단체장들이 신대기업정책의 부당성을 자연스럽게 지적할 것이고 이대표가
이의 유보 내지 철회를 약속할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는 말로 기대를
표시했다.

재계는 또 이번 회동이 95년말 이후 사실상 단절됐던 정부와의 대화채널이
복구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 이후 조금이라도 "오해 살 만한" 일은 않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경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어도 정부는 정부대로,
재계는 재계대로 다른 목소리를 내왔던 게 사실이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경제상황에 대한 상황판단의
갭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란게 재계의 기대인 셈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논리의 조기 확산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5단체장을 "부를" 경우 아무래도 경제논리 보다는
정치논리에 휘말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야당대표들의 유사한 제의를 거절할 명분이 경제단체로서는 없다.

이럴 경우 여야대표들이 경제계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주기 보다는
당리당략과 득표전략에 따라 재계를 이용하는 일이 잦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회동 자체가 정치적인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심드렁해 하고 있다.

모그룹 관계자는 "요사이는 당.정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기 때문에
집권당 대선후보라고 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오랫만에 성사되는 집권당 대선후보와 경제5단체장과의
만남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경련 등 각 경제단체가 19일 이대표에게 건의할 내용을 수집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날 오후 미국, 멕시코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전경련 손병두 상근부회장은
곧바로 사무국에 대기업규제정책의 철회를 골자로 한 건의문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그룹 관계자는 "새정권이 출범 초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잇달아 신대기업정책을 내놓아 기업을 옥죄고 있는 경제관료를 말릴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선 이런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