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관련 중소협력업체가 "무더기 도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기아사태가 발생한지 한달이 됐지만 채권단과 기아그룹간의 힘겨루기와
중소협력업체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부재로 하루하루 도산의 위기를
넘기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제는 더이상 자체 자금조달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기아의 자금력도 이미 바닥났고 은행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어 "부도"에
몰리는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달 16일 광주의 아시아 자동차 협력업체인 동진철강이 최종부도처리
된 이후 지금까지 도산한 협력업체는 1차협력업체 12개사로 집계되고 있다.

공식집계로 파악되지 않는 2,3차 영세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부도업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없는 한 일주일 이내에 수십곳이 더 도산 할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특히 15일부터 5일간 1차협력업체들이 2,3차 협력업체에 발행한 진성어음
만기가 집중 도래해 어음결제를 하지 못할 업체들의 연쇄부도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기아그룹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1만7천여개 기아 협력업체들 상당수가
어음의 할인과 결제가 마비상태에 이르러 월급 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원자재 업체들이 물품 대금의 현금 결제,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면서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사태 초기에 부동산 담보 대출과 사채를 총동원해 긴급 운영
자금을 구했으나 이마저도 고갈돼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해 있다.

기아 발행 어음은 고작 31.5%만이 할인되고 있다.

어음할인 거부 외상매출채권 내국신용장 개설중단 등으로 인한 피해액이
이미 5천억원을 넘어섰다.

기아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해온 P사의 경우 28억원의 어음중 10억원을
할인받았으나 이달 20일까지 하청업체들에게 어음결제등으로 지급해야 할
자금이 15억원을 넘는다.

이 업체의 자금담당자는 "지난달 월급을 생산직에만 50%를 지급했을 뿐
관리직원에게는 한푼도 주지 못했다"면서 "이번 달에는 월급 지급은 고사
하고 어음 결제를 못해 부도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기청의 애로신고센터에 신고된 진성어음할인 기피사례 규모는 1백70개
업체에 4백13억원에 이른다.

또 56개 업체가 57억원의 부도 어음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협력업체의 연쇄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갔는데도 금융권의 기아
어음에 대한 기피증이 여전하고 정부의 지원도 형식적인 "생색내기용 지원"
에 그쳐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정부가 상업어음 특례보증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속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고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힌 중소협력 업체의 관계자는 "협력업체의 연쇄부도는 곧바로 기아뿐
아니라 현대 대우등 다른 완성차 라인의 가동중단으로 이어져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신재섭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