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에서 일하던 한 아가씨가 품삯으로 우유한통을 받았다.

그걸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획을 세운다.

"이 우유를 팔아 병아리 열마리를 산다.

두달만 잘키우면 암탉이 돼 달걀을 낳을 거야.

그 달걀을 팔아 상호부금에 들면 6개월뒤 융자를 받을 수 있을거다.

그돈으로 드디어 나도 커다란 목장을 하나 사야지"

아가씨의 이 상상처럼 돈이란 수없이 다른 얼굴로 바뀌어져 나간다.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아가씨의 계획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자금의 회전기간을 간과했다.

병아리가 어떻게 두달만에 달걀을 낳는단 말인가.

이처럼 우리는 흔히 계획을 세우면서 돈의 규모와 이익률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회전기간에 대해선 곧잘 지나친다.

그러나 실제 자금관리에선 회전기간이 이익률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알고보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짧은 회전기간에서 나온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이 바로 이것이다.

회전기간이 짧은 절삭유 금형등의 업종의 경우 대기업들이 참여했다가
한결같이 두손을 들고말았다.

그 까닭은 자금회전기간에서 중소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뒤집어보면 중소기업으로선 자금회전기간을 단축시키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태원실업의 이강원(56)사장은 중국청도에 원적외선을 발산하는
전기침대공장을 세웠다.

그가 공장을 중국으로 옮긴 것은 인건비및 원재료등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 현지에서 기존공장을 인수,전기침대를 만들자 절반값으로 생산이
가능했다.

이를 중국시장에 내놓자 대리점을 통해 잘팔려나갔다.

그러나 중국측 대리점들이 대금결제를 제때 해주지 않았다.

일년째 돈을 받지 못한 채 외상만 쌓였다.

이런 일을 당하자 이번엔 국내에 수입해와 팔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마저 쉽지 않았다.

선적과 운송에 시간이 너무 걸렸다.

또 부산항에 도착하고보니 전기제품에 대한 형식승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이 회사의 침대는 형식승인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아직 부산항 창고에
쌓여있다.

이사장은 회전기간을 계산하지 않은 채 원가비교만 한 걸 지금에 와서야
후회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총자산중 유동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7%.

따라서 회전기간이 길면 감당해내기 어렵다.

그러나 무턱대고 자금회전기간을 짧게 잡아놓는 건 더욱 위험하다.

아무리 열심히 모이를 주어도 두달만에 달걀을 낳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상상만하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우유를 쏟아버리면
가게고 목장이고 한꺼번에 날아가버린다.

원칙적으로 자금계획이란 자금운용계획과 자금조달계획 두가지로
구분된다.

이 두가지 계획에 시차가 없어야 회사가 잘돌아 간다.

인쇄회로기판업체(PCB)를 예로 들어보자.현금으로 페놀수지를 사들여
이를 원료로 기판을 만든다.

제품을 음향기기 업체에 납품하고 대금으로 어음을 받는다.

어음을 은행에 가서 할인받으면 다시 현금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돈의 일생이다.

이 일생을 잘못 계산하면 원료구입비 조달이 필요한데도 아직 돈이
돼돌아오지 않는다.

이로인해 공장이 쉴 수도 있다.

때문에 각자 자기업종의 회전기간이 며칠인지를 엄격하게 파악해보자.

이를 더 당길수는 없는지 체크해보자.

사람의 일생은 긴게 좋지만 돈의 일생은 짧을수록 좋다.

< 이치구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