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의 비협조, 정부의 방관, 여기에 정작 기아그룹 스스로의 소극적
대응으로 기업회생을 위한 부도협약이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채권금융단들의 무책임한 대응은 기아관련 수출신용장 매입과 어음
할인 기피를 통해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금융단 일선창구에는 "보신주의"풍토가 확산, 금융기관및 신용보증기관의
지원 방침이 실무부서까지 제대로 전달 시행되지 않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부도유예협약은 채권단의 유기적인 협조와 위험 분산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무책임과 방관자적 태도가 만연하면서 협약 자체가 무용지물화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부도협약의 운용과 관련해 구체적인 협조사항을 분명히 명시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고 정부 역시 지금 처럼 자율결정이라는
명분만을 내걸게 아니라 기아처리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긴요
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채권단간 비협조 =다른 채권단에 대한 제일은행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다른 은행들이 기아발행어음의 할인과 수출환어음(DA) 수출 LC매입 등을
모두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에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은 지금까지 요청금액의 80%이상을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기아그룹및 협력업체로부터 "고맙다"는 반응은 커녕 "지원이
인색하다"는 비난만 듣고 있다는게 제일은행측의 불만이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이럴줄 알았으면 부도유예를 결정하지도 않았을 것"
이라며 "주거래은행이 모든 지원과 책임을 떠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어음장교부 =기아에 여신이 많은 조흥 신한등은 어음장교부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이들 은행의 경영층은 어음장을 계속 교부하도록 지시해 두고 있지만
일선창구에서는 지시가 먹히지 않고 있다.

8일 현재 기아가 하청업체에 결제하지 못하고 있는 73억원의 내역을 알아
보면 의문이 풀린다.

기아그룹 관계자는 "어음장교부가 종전의 30%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1억원미만짜리는 결제가 불가능하다"며 "73억원은 어음장이 모자라 발행하지
못한 소액결제금의 합계"라고 말했다.

<> 협력업체 지원부실 =8일 현재 기아발행어음에 대한 은행권의 할인실적은
1천1백억원 수준.

그러나 8일현재 중소기업청에 신고된 진성어음 할인기피 신고액은 1백61개
업체 3백84억원에 달하고 있다.

정부와 은행감독원에서 진성어음할인을 독려하고는 있지만 은행창구는
요지부동이다.

특히 정부가 기아협력업체에 대해 1조원규모의 특례보증을 약속했음에도
불구, 지금까지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특례보증을 받은 규모는 1백71억원
(1백10개 업체)에 불과하다.

보증실적이 이처럼 부진한 이유는 정부-보증기관-협력업체-은행등 다단계로
이어지는 보증절차속에서 개별기관의 이해관계가 상충,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기아그룹 =제일은행은 기아가 주거래은행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다른 은행이 "주거래은행으로 가보라"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를 제일은행으로
들고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아노조의 태도도 부도유예협약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다.

협약의 성격상 채권단의 공식적인 대화창구는 회사측임에도 불구, 노조가
파업운운하며 돌출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 조일훈.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