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 채권금융단의 대표자회의가 또다시 연기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채권단이 자금지원의 선결요건으로 요구한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및
아시아자동차의 분리매각을 기아측이 계속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대우가 기아특수강 경영참여를 선언하는 등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점도 한 요인이 됐다.

현 시점에서 두가지는 확실한 듯하다.

첫째, 채권단이 여전히 강경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까지는 기아그룹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는 4일 회의도 무산될 경우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해진다.

채권단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도유예협약 적용일정도 그다지 넉넉한 것은 아니다.

기아측이 만약 다음 회의때도 채권단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상황은 기아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채권단은 일정기간동안 부도를 유예해주되 자금지원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그 후에도 "우호적인" 관계정립은 어려울게 뻔하다.

따라서 채권단이 기아측에 재차 시간을 준 것은 사실상 최후통첩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기아살리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향후 강경대응에
대비한 명분축적의 의미도 있다.

채권단내부는 기아처리를 놓고 강경론이 득세하고있는 형국이다.

1일 회의에서도 이같은 기류가 감지됐다.

회의초 류시열 제일은행장은 김회장의 자구계획에 대한 보충설명을 제지한뒤
"채권단의 요구를 거절한 것을 전제로" 대표자회의를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다분히 공세적인 태도였다.

이에 대해 참석대표들은 자구계획이 미흡한 상황에서 더이상 회의를 진행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류행장에 동조했으며 기아성토 분위기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금융기관 대표들은 기아측의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거부에도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10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도를 냈으면 무조건 각서를
제출하는 것이 온당한데도 자꾸 "조건"을 단다는 인식이다.

이는 물론 김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 경영진에 대한 채권단의 깊은 불신과도
무관치않다.

채권단은 그러나 최근 며칠사이에 전개된 새로운 양상에 주목하고 있다.

경위야 어쨌든 현대 대우가 기아특수강 경영참여를 선언한 것은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기아가 1일 보완 제출한 일부 자구계획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제일은행의 이호근 이사는 "기산의 계열분리와 부동산 매각방안 등은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이어서 수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황으로 미뤄볼때 채권단과 기아가 앞으로 한발짝씩 물러나 충분히
절충점을 찾을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오는 4일 회의에선 김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도유예협약의 취지상 부도유예기간의 설정을 마냥 미룰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