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이후 대미무역흑자가 늘면서 하미간 무역마찰이 가열되자
통상변호사의 역할과 비중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무렵 조대연 신희식 등 미국에서 통상을 공부하고 돌아온 몇 안되는
변호사들에겐 연이어 불거져나온 통상현안들에 대한 용역들이 맡겨진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통상변호사 1세대군이 형성되게 된다.

한미간 담배협상때 활약했던 김찬진 변호사도 같은 범주다.

이들은 통상문제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일찌감치 이 분야에 뛰어든
선각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보조역할을 하며 본격적으로 통상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변호사들이 흔히 "1.5세대"내지 "2세대" 통상변호사로 분류된다.

1.5세대 통상변호사들의 특징은 로펌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신참내기
때부터 한미간의 현안을 중심으로 돌출되던 통상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

나이로 보면 이들은 30대 중반이 대부분이다.

김&장의 박병무 박성엽 황창식 변호사, 태평양의 서동우 김종길 변호사와
통상산업부에서 영입한 표인수 변호사(미국변호사), 법무법인 광장의 김형진
서혜석(미국변호사)변호사, 한미합동의 안용석 박광배 변호사 등이 그들이다.

2세대 통상변호사들이라 하면 1.5세대 변호사들 밑에서 일을 배우거나
이들을 도와 일을 처리하고 있는 변호사들이다.

WTO(세계무역기구)태동을 전후해 통상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신참변호사
들이다.

최근 정부에서 미국의 한국산 컬러TV나 D램에 대한 덤핑규제와 관련,
WTO에 이를 제소하거나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들의 활약이 크게 주목된다.

김&장의 박은영 이응진 김광일 변호사, 세종의 이창원 변호사(미국
보스톤대 유학중), 태평양의 이준기 김도형 변호사, 광장의 문흥대 변호사
등은 주목받는 신예 통상변호사들.

어느 세대이든 통상문제를 전공하는 변호사들은 다소 별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는 요즘 1년에 1백~1백50명 정도.

이중 통상에 관심을 두는 변호사들은 2,3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나 법원을 상대로 우월적인 지위에서 얼마든지 변호사일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그 어렵고 힘든 통상분야를 택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통상쪽을 택한 변호사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1세대는 물론, 1.5세대나 2세대도 마찬가지다.

"판사도 검사도 싫다.

그렇다고 단순히 돈만 버는 것도 싫다.

돈도 벌면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들이 통상을
전문분야로 택한 동기인 셈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일개 개인이나 기업의 차원을 넘어 산업
전반, 통상정책전반에 큰 몫을 할 수 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건당 수십억원에서 수조원의 이해가 걸리고 한 나라의 산업의 흥망이
왔다갔다하는 통상판에서 각국 두뇌들과 지혜를 겨루는 것, 이것이 그들이
즐기는 게임이다.

자연 유창한 영어는 통상변호사의 필수요소다.

국제관련법에도 능통해야 한다.

이때문에 통상변호사들은 대부분 유학파다.

하버드 예일대외에도 특히 통상법으로 유명한 미시간대 뉴욕대 그밖에
워싱턴DC의 조지타운대 등에서 공부한 변호사들이 많은 편이다.

통상법의 수퍼스타인 미시간대의 존 잭슨 교수밑에서 방현 안용석
변호사가 수학했다.

김두식 변호사는 시카고대에서 잭슨교수의 제자인 알렌 사익스에게서
배웠다.

역시 국제법 국제통상법 국제금융의 대가인 뉴욕대 안드레아 로웬펠드교수
밑에선 김형진 변호사가 수학했다.

하버드출신으로는 박병무 황창식 이응진 변호사, 예일은 조대연 신희택
변호사, 콜럼비아는 전강석 변호사, 노틀담대는 이정훈 변호사 등이 있다.

< 채자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