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대우의 기아그룹 공동 인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기아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수없이 떠돌고 있는 루머 가운데 삼성의
시나리오설과 함께 가장 그럴듯하게 흘러다니는 소문이다.

급기야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제주도에서
만나 현대는 기아그룹의 승용차부문을, 대우그룹은 상용차부문을 각각 나눠
인수하기로 합의까지 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정명예회장과 김회장이 제주도에서 만난 것은 사실이다.

지난 25일 제주 호텔신라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세미나에서 정명예회장과
김회장은 만찬을 가진뒤 술자리로 옮겨 밤 11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이 자리는 두사람만이 있었던게 아니라 하계세미나에 참석했던
다른 재계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해 기아그룹을 서로 나눠 갖자는 중요한
이야기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양사 관계자들도 이같은 루머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은 그저 웃어버릴 정도다.

그러면 왜 이같은 루머가 신빙성있게 떠다니고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기아그룹의 인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현대나 대우 모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를 삼성에게 넘기는 것만은 막겠다"는게 이들의 공식 입장이다.

기아를 인수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기아의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주든지 아니면 어쩔수 없을 경우
인수도 배제할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이미 기아그룹의 부도유예협약 적용 직전 기아자동차와 기산이 발행한
전환사채(CB)를 현대와 대우가 전량 인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나 대우가 이처럼 기아의 "보호" 내지 "불가피할 경우 인수"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은 삼성이 기아를 인수했을 경우의 파장이 걷잡을수
없는 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우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경우 단기적
으로 삼성이 현대 다음으로 국내 2위에 올라서며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시장
1위의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연구소가 이처럼 전망하고 있는 것은 삼성의 자금력과 계열사의 지원으로
판매력과 기업이미지 측면에서 현대나 대우보다 우월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
이다.

더욱이 기아의 스포티지, 아시아의 록스타 등 성장성이 높은 RV(레저용
자동차) 측면을 강화하고 현재 기아가 구축해놓은 해외수출기반과 현지생산
체체를 확대하면 삼성의 위협은 더욱 커진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연구소의 분석은 이미 업계가 모두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
이다.

그만큼 기아그룹의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로서는 승용차부문을 인수해 별도 디비전으로 확보, 삼성을
방어하고 대우는 상용차부문을 인수해 지금은 갖고 있지 않은 RV와 중소형
상용차 쪽을 강화한다는게 루머의 골자다.

더욱이 현대는 삼성이 매출 13조원 규모의 기아그룹을 인수할 경우 적어도
10년간은 재계 순위에서 2위로 밀려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데 크게 긴장하고
있다.

물론 지금 기아의 인수를 적극 추진한다는 루머는 모두 부인하고 있다.

정몽규 현대자동차 회장은 "지금으로서 부채 9조의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현대나 삼성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태구 대우자동차 회장도 "지금 기아의 회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이지
인수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삼성이 기아를 먹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것만큼은 현대나
대우 모두 감추지 않고 있는 기본전략이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