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 노사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단체협약을 전면 개정키로 잠정 합의
했다.

노조우위의 단체협약을 고치지 않으면 지원할수 없다는 채권은행단의 입장
을 수용한 것이다.

기아그룹 경영혁신기획단(단장 한승준)은 26일 오후 6개 계열사 노조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단체협약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을
설명했다.

노조대표들은 처음엔 "노조를 말살하려 하느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채권은행단의 요구를 거부, 그룹이 쓰러지고 나면 회사를 살리려는
노력도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이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이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같은 노사관계 혁신안은 28일의 노조 상임집행위원회 및 대의원
대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채권은행단이 기아그룹 단체협약을 문제삼고 나선 것은 경영정상화를 가로
막는 "독소조항"들이 너무 많다고 판단한 때문.

노조의 동의 없이는 경영진이 인사권 경영권을 행사할수 없게 돼 있는
구조적 요인들이 쟁점이 되고 있다.

채권은행단은 이 조항들을 그대로 두면 자금지원을 계속해도 경영정상화가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채권은행단측에 기아그룹 단체협약의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는 자력정상화가 어려워 최후 수단인 제3자인수까지도 가정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현재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등 대부분 기아그룹 계열사에는 인사위원회
와 징계위원회가 노사 동수로 구성돼 있다.

특히 해고와 같은 중징계의 경우 3분의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도급,용역, 합병.양도, 공장이전 등 주요 경영방침 결정도 노조와 합의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회사가 원가를 줄이기 위해 특정분야를 하도급으로 바꾸고
싶어도 노조가 거부하면 비효율적일지라도 자체생산을 계속해야 한다.

회사가 사원들에게 교육훈련을 실시하거나 파견할 때도 사전에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기아그룹 노조가 단체협약을 전면 재검토, 문제조항들을 개정키로 방향을
선회함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일 것이라는게 노동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규모 강성 사업장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단체협약에 기아그룹
채권은행단이 문제삼는 조항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그룹 노사가 단체협약을 고치고 나면 다른 사업장들에서도 비슷한
결정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노동전문가들은 노동운동이 본격화된 87년 이전에는 단체협약이 회사우위로
만들어졌으나 90년대 들어 대형 사업장들에서 노사대등 내지 노조우위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또 노조우위의 단체협약을 갖고 있는 사업장의 경우 경영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어느 자동차회사는 5천여명의 잉여인력을 안고 있다.

그러다보니 생산라인에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는 근로자
까지 등장했다.

그런데도 회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인력조정에 대해서는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끝까지 권리를 지키느냐, 이를 포기함으로써 회사를
살리고 일자리를 보장받느냐"

기아그룹 근로자들은 지금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단체협약상의 권리를 고집하면 자금지원을 받지 못해 그룹이 쓰러진다.

수년간 투쟁을 통해 얻은 권리를 포기하자니 아쉬움이 있다.

기존 단체협약을 개정하면 생산직근로자의 인원을 줄여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6개핵심계열사 노조대표가 우여곡절끝에 회사측의 노사관계혁신안을 일단
수용키로 한것은 회사를 살려야 노조도 살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때문
으로 풀이된다.

이런 면에서 기아그룹노사의 이번 의견조율은 한국 노사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김광현.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