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살아날 기업이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금융기관들 사이에는 어음이든 채권이든 믿을 게 없다는 식의 불신이
떠돌고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금융기관들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다며 공포감
에 떨고 있다.

금리와 환율이 다시 들먹이고 채권시장은 거래가 두절되는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한마디로 신용공황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최근의 금융위기는 기업경영과 금융기관의 실패일 뿐
구조적인 위기는 아니라는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방만한 차입경영과 부실한 재무관리가 문제의 본질라는
원론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위기가 있다고 해서 섣불리 재무구조 개선 대책을 철회하면 그동안의
노력마저 물거품이 될 것"(재경원 고위 관계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보사태 이후 최근 수개월 동안 진행되고 있는 금융시장의 불안은
기업 경영이나 시장의 실패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실패라는 주장이
금융시장과 경제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유상증자등 직접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은행살리기에 촛점을 맞춘 섣부른
부도 협약의 적용, 채무보증 제도에 대한 몰이해, 기업 재무 구조개선에
대한 지나치게 급진적인 제도의 도입등 일련의 정부 정책이 오히려 신용
공황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계의 일부 인사들은 재경원이 최근들어 행정목적과 행정수단, 이론과
정책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정부는 업계의 주장을 반발로만 보지 말고
정확한 상황파악부터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부도협약문제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중 특히 부도방지협약은 은행의 부실채권 발생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2금융권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전체 금융의 불안이
제2금융권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2금융권은 이번 기아그룹의 경우에도 은행들이 성급하게 부도협약을
적용했다고 주장하고 지금같은 분위기에서는 현대 삼성 엘지등 3대 그룹을
제외하면 30대 그룹 전체가 부도협약으로 들어갈 지경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금융권 전체의 책임을 강조한 부도협약이 은행들의 상대적 무책임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유상증자규제

금융계는 은행등 간접 금융시장에서 돈빌리기가 어려우면 직접금융 시장
에서라도 자금을 조달할수 있어야 하지만 이길 역시 막혀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기업당 1천억원 범위에서 허용되는 유상증자는 배당금(400원 이상),
배당성향(22% 이상) 등 불요필한 정부 규제가 많고 그나마 1년에 1회에
한해서만 허용되는 등 제한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업 재무담당자들은 유상증자는 시장질서에 맡길 문제일 뿐 자기신용에
의한 자금조달조차 정부가 막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전면적인 자유화를
신속히 실시해줄 것을 요망하고 있다.

<> 재무구조개선유도

회사채 역시 막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 7월1일부터는 증권사의 회사채 지급보증마저 금지돼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증권계는 정부가 기업들의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재무구조 개선이 곧 자금난을 의미한다면 이는 기업죽이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재무구조 개선은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를 통해 추구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계는 이외에도 대기업들에는 금지되어 있는 1년짜리 회사채의 발행을
허용하는 등 단기자금 조달의 길을 정부가 열어 주고 중소기업에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한도를 높여 보증기관도 살고 기업도 살리는 확대균형
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시급한 위기관리 대책이 요망되는 싯점이라는 얘기다.

(정규재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