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

기아쇼크에 이은 10대그룹의 자금악화설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금융기관들
이 어음할인이나 매수업무에 손을 놓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어음을 통한 기업의 자금 흐름이 막히고 있다.

종금사들은 "기업들이 운전자금 융통을 위해 새로 발행하는 어음을 할인해
주려 해도 초우량기업 발행어음만을 제외하곤 은행 등이 사가지 않아 할인
할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하고 있다.

특히 "종금사가 지급보증한 어음도 은행신탁이 신중하게 선별해 사고 있다"
(지방종금사 관계자).

물론 무담보 CP를 은행에서 살때 종금사의 지급보증은 금지돼 있긴 하지만
부실한 기업의 CP는 종금사가 지급보증을 해 매출하곤 했는데 이도 이제는
여의치 않게 된 것이다.

기아쇼크로 종금사도 한은특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종금업계
에서 나올 정도로 종금사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금융기관도 믿기 힘들게
됐다는 불신감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기관간에 유동성 조절을 위한 콜시장에서는 부실여신이 많은 종금과
증권사 등이 콜차입을 차츰 늘리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

이날도 오전에는 콜론이 평소보다 8천억원 정도 적은 2천억원정도만 나올
정도로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금융기관간 불신의 벽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는 다시 대기업대출 창구
마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음 만기 연장도 과거에는 일선 직원이 자체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의심나다 싶으면 여신책임자에게 확인을 거치는 일이 잦아진 것도 이 때문
이다.

기업들이 물품대금으로 받는 진성어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아쇼크로 기아협력업체에 대한 진성어음 할인이 끊기다 시피한 상태에다
자금악화설이 도는 일부 대기업의 협력업체들도 진성어음을 은행에서 제때
할인받지 못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돈이 기업으로 흘러가지 않는데도 시중자금사정을 나타내는 금리는 기아쇼크
초반에만 불안조짐을 보였을뿐 안정세를 보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23일 연 12.10%로 기아가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가기
하루전인 14일(연 11.87%)보다 0.26%포인트 올랐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한국은행이 시중에 적극 돈을 풀면서 유동성 조절에 나선
덕에 연 11.69%로 0.4%포인트 상승하는데 그치는 등 가장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다만 3개월짜리 CP할인율은 연 12.30%로 같은 기간중 0.75%포인트 올랐다.

종금사 관계자는 "CP금리는 기업의 신용도를 재는 잣대나 같다"며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CP금리에 영향을 주는 초단기금리인 콜금리가 안정세를
띠고 있고 금융기관들이 CP매입 자체를 극도로 보수화하면서 급등현상이
안나타날 뿐"이라고 말했다.

시중의 자금수급이 잘 이뤄져서 금리지표가 양호한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28일 국고로 환수되는 3조5천억원의 부가세가 있는데다 10대그룹의
자금악화설이 잦아들지 않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 오광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