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22일 월례회의를 긴급 회의로 바꿔 기업금융간담회를
가진 것은 최근의 경제위기가 금융시장의 불안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보그룹 부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대기업그룹의 부도와 경영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금융기관이 집단 면피주의로 일관하고 정부가 구경만
하고 있으면 경제공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재계의 우려다.

기아그룹의 경영위기만 해도 부채가 많은데다 자동차업계의 출혈경쟁 과정
에서 경영상태가 나빠진 탓도 있지만 금융기관들의 계속된 "자금 테스트"와
대출금의 조기.집중 회수가 가속화한 것이 사실이다.

기아는 지난 2개월 동안 제2금융권에서 4천억원의 대출금을 회수해 갔지만
정작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은 같은 기간동안 4백억원을 추가 대출하는데
그쳤었다.

기아 관계자는 "이렇게 한꺼번에 대출금을 회수해 간다면 기아 아니라 어느
그룹이라도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금융권의 이같은 몸사리기가 한동안 계속되고 더욱
심화될 것이란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모그룹 관계자는 이날 회의에서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의 리스트가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물릴 것을 염려한 금융기관들이 또 대출금을 조기
회수하기 시작하면 대기업 그룹의 부도 도미노는 중단시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재정경제원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공문까지 각
금융기관에 보내며 기아그룹이 발행한 진성어음을 할인해 줄 것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정도로 금융기관의 몸사리기와 이로인한 금융
시장의 불안은 좀 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 재무담당자들이 우려하는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금융기관들도 최근 들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자금조달 사정은 시간이 갈 수록 더 악화될 것이는게 이들의 분석이다.

은행들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대외신인도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차입
금리수준이 리보(런던은행간금리)+1%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초 국내
기업들에게 리보+0.5%로 약속했던 무역신용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전경련 김태일이사는 이와 관련 "경기가 부진할 때는 정부가 우선 금융
정책을 완화해 주어야 한다"고 전제, "지금을 금융비상사태로 선포하고
일정 기간 동안의 기업대출건은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을 통해 통화공급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통화신용
정책을 펴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