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특수강이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중도상환을 놓고 국제적인 금융분쟁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 전환사채를 중도상환하면서 투자자금을 되찾은 국내외금융기관들은
17일 이 CB의 채권결제기관인 벨기에의 유러클리어로부터 돈을 다시
돌려달라는 공문을 받자 법정소송 제기 움직임까지 보이는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채권금융기관 가운데는 5~6개 국내은행과 종금사도 포함돼 있다.

금융계는 "기아가 해외 CB 상환자금을 갚지 못할 경우 기아그룹이 발행한
채권뿐 아니라 유럽 등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에 대한 신용도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기아특수강은 지난 92년 7월 2천6백만달러의 CB를 해외에서 발행했다.

산업증권과 슈로더가 공동주간사였고 지급대리인은 체이스런던, 채권
관리기관은 유러클리어가 맡았다.

그런데 이 전환사채는 발행한지 5년이 지나면 투자자들이 조기상환권을
청구,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돌려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발행됐다.

발행후 5년째 되는 날이 지난 13일.

공교롭게 공휴일이었다.

기아특수강이 계속해서 자금난을 겪는 등 경영난이 지속되자 투자자들
모두 조기상환권을 청구, 14일 투자자금을 돌려 받았다.

이자를 포함해 3천4백만달러(3백억원)이었다.

문제는 자금을 돌려 받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기아특수강은 해외CB 현금상환일인 14일 체이스런던에 편지를 보내 "CB
상환금액을 입금 못해 미안하다. 16일까지 반드시 입금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날 채권관리기관인 유러클리어는 관례대로 일단 투자자들에게 상환금액
을 지급한 다음 기아의 지급대리인인 체이스런던에 "기아특수강으로부터
상환금액이 입금되지 않았다"며 경위를 물었다.

체이스런던은 기아특수강이 보낸 편지내용을 유러클리어에 알려줬고
유러클리어는 16일까지 기다리기로 했었다.

그러나 상환금액이 투자자들에게 지급된 다음날인 15일 기아특수강을
포함한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으로 지정됐다.

16일에 기아가 자금을 입금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유러클리어는 투자자의 계좌로부터 돈을 17일 회수했으며 계좌가
없는 투자자들에게는 공문을 보내 돈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역외금융을 하면서 문제의 기아특수강 CB를 매입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제관례상 이미 돌려준 투자자금을 강제로 회수한 선례가 없다"며 "채권
금융기관끼리 전화통화를 통해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아특수강은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통상적으로 만기후 2주내에
원금을 갚도록 상환기한이 유예되는게 관례"라며 "오는 30일 1차 채권
금융기관 대표자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광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