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이 좌초위기에 몰리면서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재계 8위의 기아그룹이 벼랑에 내몰린 것이 정부가 지난 수년간 금과옥조
처럼 시행해 오던 업종전문화와 소유분산제도가 실패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기아는 사실 전문경영인체제와 소유지분의 광범한 분산으로 그동안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지향해야할 하나의 모범 사례로 간주되어 왔다.

정부 스스로도 기아를 업종전문화가 잘되어 있고 대주주 전횡이 제도적으로
차단된 이상적인 경영구조를 갖는 기업으로 평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런 기아그룹이 극심한 자금난을 겪은 끝에 부도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되는 상황으로 내몰린 만큼 그간 정부가 추진해 왔던 대기업정책이
현실성을 결하고 있다는 경제계의 비판이 자연스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기아그룹이 파국을 맞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경제계와는
전혀 다른 진단을 내리고 있다.

기아그룹이 부도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된 지난 15일 강경식 부총리는
기자들을 만나 기아의 자금난은 선단식 경영의 한계를 잘 보여준 것이라고
진단하고 오너 경영에 버금가는 경영진의 전횡, 자동차가 아닌 건설 특수강
분야의 누적부실등을 기아그룹 위기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업종전문화가 기업위기를 부른 것도 아닐 뿐더러 소유분산이 부도를 초래
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게 재경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기아 사태는 최근들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강경한
대기업 정책 기조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아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이 다른 만큼 물론 경제계와 정부의 향후
대응책도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동안에도 재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던 계열사 지금보증 폐지, 손비
인정축소, 결합재무제표등 분야들은 이번 사건으로 더욱 치열한 논란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업종전문화=업종전문화 제도는 지난 91년 주력업체 제도, 93년 업종
전문화제도 등을 통해 대기업으로 하여금 다각화를 자제하도록 유도해
오다가 지난 1월 폐지된 제도다.

그러나 정부는 다른 수단들을 통해 사실상 대기업그룹의 전문화제도를
꾸준히 추진해온 것도 사실이다.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 폐지등은 한개 그룹이 일정 분야에 자원을 집중
투자해 경쟁력을 제고할수 있고 문어발 확장을 줄여 국내시장에서의 경쟁도
촉진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재계는 기아가 다른 그룹에 비해 월등히 전문업종에 투자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업종전문화는 경영의 안정에 아무런 실효가 없는 행정
규제일 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특히 자체 금융의 지원미비등 위험의 분산정도가 낮았던 것이
기아가 화를 자초한 배경이라며 업종 다각화등은 전적으로 기업의 자체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소유분산=정부는 소유지분이 잘분산되어 있을 경우 출자총액 제한을
완화해 주는등 소유분산 대책을 추진해 왔다.

또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추구하고 대주주가 직접경영일선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도화할 것을 추진중에 있다.

대그룹의 기획조정실의 폐지나 그룹 회장에 대한 책임제 도입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경제계는 그러나 지분의 분산이 기아의 경우처럼 오히려 무책임한 경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다.

주인이 없기 때문에 경영의 핵이 없고 특히 위기에 닥쳤을 때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정부는 기아의 경우 경영의 실패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소유분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진로등에서 보듯이 소유의 집중과 최고 경영자 교체의
비탄력성이 경영의 고착화를 부를 위험성이 더욱 크다고 보고 있다.

<>.전망=어떻든 이번 기아사건으로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는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주회사의 도입을 새로 검토키로 한 것은 이번 기아 사태의
교훈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대기업 그룹중 그동안 가장 모범적으로 평가되던 경영구조를 가졌던 기아가
위기에 처한 만큼 앞으로 학계나 정부에서는 그만큼 연구할 대목이 많아진
것은 분명한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