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보세요,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의 임금이 영국 로버사와 같질
않습니까"

노사분규가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

답답하다는 표정의 김영귀 기아자동차 사장이 와이셔츠 주머니의 메모를
내보이며 한 말이다.

시간당 임금이 기아자동차는 11달러인데 비해 영국 자동차업계는
11.8달러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8~10달러로 오히려 낮다.

갓 1만달러시대에 진입한 나라의 임금이 선진국보다 높은 셈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온갖 비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평균임금에 성과급 일시금만을 더한 수치다.

외국 자동차공장에 가보면 근로자들 모두 조그만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점심 도시락이다.

국내 업계 공장에서는 점심을 무료로 제공한다.

그것도 아주 괜찮은 수준이다.

뿐만 아니다.

작업복도 철마다 갈아주고 구내이발소에선 머리도 공짜로 깎아준다.

임금이 높아도 생산성만 따라가 준다면 괜찮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기아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업계 근로자 1명이 연간
생산하는 자동차 대수는 지난해 26.1대.

물론 90년의 17.6대에 비해 나아진 것이다.

하지만 경쟁국 일본의 주요메이커 5사 1인당 생산대수는 95년 39.9대나
된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 미즈지마공장 같은 곳은 근로자 1명이 한해동안
1백17대를 만들어 낸다.

상대가 안된다.

시간당 임금은 비슷한데 근로시간은 훨씬 길어 회사가 부담해야하는
임금은 더욱 늘어난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연간 근로시간은 1천9백73시간.

지난 6년간 철저한 생산성 제고를 통해 2백60시간을 단축했다.

반면 한국 생산직의 근로시간은 2천5백시간이다.

무려 5백시간이나 많다.

근로시간이 많아지면 잔업이나 특근이 늘어나게 된다.

잔업수당은 정상근무때보다 1.5배가 높아진다.

이래저래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복잡하게 얽혀들어간다.

미국 MIT대가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 조립공장을 대상으로 차량 1대당
작업시간을 조사했다.

결과는 일본의 대당 투입시간이 16.6시간.

한국은 26.5시간으로 나왔다.

우리나라가 무려 10시간이나 길다.

근로시간은 길고 생산성이 낮다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맹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근로시간이 길다고 꼼꼼히 만드는 것도 아니다.

아직 국산차의 품질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품질 조사기관인 J D 파워사는 매년 미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품질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는다.

해당 차량 1백대를 골라 결점수를 찾는 IQS방법이다.

올해 조사된 국산 소형차의 IQS지수는 1백5건이다.

90년대초에 비해선 전반이나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 자동차시장 평균 86건에 비해 뒤처져 있다.

일본의 대표적 소형차인 도요타 터셀의 65건에 비하면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경쟁요소에서 하나라도 앞서는 것이 없다.

이래선 선진업체와의 경쟁은 불가능하다.

내부의 구조조정도 빠르게 진행돼야 하는 이유다.

<김정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