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이아코카"는 과연 무대에서 내려 오는가.

기아그룹이 좌초 위기에 처해 부도방지협약 적용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재계
에선 한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전문경영인인 김선홍회장(65)의 거취에 주목
하고 있다.

80년대초 합리화 업체였던 기아자동차를 봉고신화로 일으켜 세운 김회장이
이젠 그의 삶의 궤적과도 같은 기아그룹의 경영에서 손을 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회장의 인생은 기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후 58년 기아산업에 입사해 40년 가까이를
기아에만 몸담아 왔다.

엔지니어로서 지난 73년 한국 최초의 일관공정 시스템을 갖춘 종합자동차
공장인 소하리 공장 건설을 주도했고 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기아와
동아자동차가 합병된 후엔 사장을 맡아 기아자동차의 골격을 세웠다.

승합차의 대명사인 봉고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때였다.

일본의 마쓰다, 미국의 포드와 3각협력 체제를 구축해 프라이드를 탄생시킨
것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지난 90년엔 전문경영인으로 기아그룹 회장에 취임해 한국의 경영사에
새로운 장을 연 장본인이 됐다.

지난해 자산기준으론 재계 8위에 기아그룹을 올려 놓음으로써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형태의 비오너 대기업 그룹을 창조해 냈다.

그런 김회장이 기아그룹의 위기로 자신도 코너에 몰려 있다.

채권금융기관들은 오는 30일 기아그룹 경영진의 진퇴여부를 논의할 예정
이다.

이미 대부분의 계열사를 통폐합하거나 매각한 후 자동차 전문 소그룹으로
재편한다는 방침이어서 김회장을 포함한 현재 경영진의 퇴진 가능성이 높다
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그에겐 공과가 모두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70년대말 위기에 봉착한 기아자동차를 재건했고 오너 없는 대기업 그룹을
일궈내 한국의 경영사에 한페이지를 장식했다는게 대표적인 공로다.

그러나 80년대말 이후 무리한 사업확장과 신규 사업진출로 기아그룹의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켰다는 책임도 지적될 수 있다.

어쨌든 김회장은 기아자동차가 최근 M&A설등 악성루머에 휘말려 돈줄이
오그라들자 발이 닳도록 은행을 뛰어 다니며 기아회생에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선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치다시피한 기아그룹에 오너 이상의 강한
애착과 집념을 갖고 있었다는게 그룹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한때 "기업도 적이 있어야 강해진다"며 숱한 M&A설에도 자신감을 내비쳤던
김회장.

그가 기아그룹의 위기와 함께 경영자로서 최대의 기로에 봉착해 있다.

기아그룹의 경영권을 손에서 놓고 무대에서 내려올지,아니면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재편될 새로운 기아의 전문 경영인으로서 제2의 신화를
창조하는 주역이 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차병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