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리딩뱅크를 자처했던 제일은행이 회생불능의 상태로 빠졌다.

연초 한보철강 1조원, 삼미특수강 4천억원 등 상반기에만 2조원가량의 거액
부실여신을 떠안았던 제일은행.

15일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선정된 기아그룹에도 8천1백42억원의
여신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아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자금난을 완화하기
우해 한국은행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등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제일은행은 올들어 안게된 2조원가량의 부실여신으로 인해 상반기에만
3천5백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국내 은행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적자인 셈이다.

이같은 대규모 적자사태를 예상, 임원보수의 30%를 반납하고 직원들도
임금의 10%를 자진 반납했다.

또 5월중 제일창업투자를 매각했으며 일은상호신용금고는 현재 매물로
내놓고 있다.

이와함께 비업무용 자산을 매각하는 등 다각적인 자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티끌모으기도 태산같은 부실앞에 넋없이 무너지고 있다.

당장 2조원의 신규부실에서 연간 2천억원규모의 이자소득이 줄어드는데다
대손충당금 적립부담도 수천억원에 이르고 있어서다.

이는 지난해 업무이익 4천4백34억원을 쉽사리 뛰어넘는다.

여기에 기아그룹까지 겹침으로써 제일은행의 적자규모는 자칫 올해에만
1조원에 이를 것이란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의 제일은행 살리기가 본격화되는게 아니냐는
기들도 흘러나온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이날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 대상에 포함됨에
따라 대출금이 묶이게 될 제일은행이 자금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앞으로 한국은행에 협의해 제일은행에 환매조건부 채권매매(RP)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제일은행도 그동안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수시로 금융당국에 한은특융을
요청해왔었다.

규모는 2~3조원가량으로 알려졌지만 제일은행을 살리기 위해선 최소한
5조원의 자금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많다.

그러나 정책금융 축소라는 흐름에 비춰 이는 또다른 특혜에 해당되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그만큼 부담을 안게 된다.

또 특융을 지원할 경우 2년 연속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서울은행 등과의
차별대우도 부각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성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