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 18개 계열사가 결국 부도유예협약 신청을 하게 된 배경은 과다한
금융비용을 감당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아그룹의 여신규모는 제1금융권 5조4천8백45억원, 제2금융권 4조5백15억원
등 모두 9조5천3백60억원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다 알려지지 않은 사채 등을 감안하면 10조원을 훨씬 넘는다는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한해 금융비용만 해도 1조원에 육박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해 기아그룹 전체의 경영수지는 1천2백91억원의 적자였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운영자금이 모자랐을테고 제2금융권에서 단기로 자금을
차입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됐다.

기아그룹이 올들어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올들어 한보 삼미 진로 대농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연쇄부도파문에
휩싸이면서 기아그룹을 둘러싼 악성루머는 종금사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로
이어졌고 그 결과가 "부도유예" 처방인 셈이다.

특히 기아의 지분상 안정적인 대주주가 없다는 약점으로 인해 인수합병설이
끊임없이 나돈 것도 자금난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일은행에 따르면 최근 두달간 기아그룹을 대상으로 한 어음교환은 하루
평균 1천5백억여원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어렵사리 결제기간을 연장했지만 대부분 3일짜리 미만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교환규모는 불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3천억원이상의 어음결제를 대부분 연기함으로써 자금난을 다소
덜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않았던 것이다.

종금사는 어음결제연장은 길어야 1주일이었다.

이같은 "결제조건부 여신"은 5천억원이 넘는다는게 제일은행의 설명이다.

제일은행도 지난 5월부터 모두 8백억원이 넘는 일시대를 지원했지만 역부족
이었다.

이 과정에서 유시열 제일은행장은 지난 14일 기아그룹의 김선홍 회장과
단독면담을 통해 "오늘 교환에 회부될 4천억원을 막지 못하면 내일 부도유예
협약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그러나 여력이 없는 기아그룹으로서는 제일은행의 부도유예협약신청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보면 기아그룹에 대한 부도유예협약 신청은 기아그룹이 원했다기
보다는 기아측이 자포자기한 가운데 제일은행이 결행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