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경기는 지금 호황인가''

상반기 조선수주량이 5백27만GT(선박총t수)로 작년동기보다 2.7배나
늘어나자 조선산업에 대한 장밋빛 진단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1위의 조선대국 자리를 금방이라도 되찾을
것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막상 경영진들의 얼굴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수주는 호조, 선가는 약세''라는 왜곡현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도 같이 오르는게 상식인데 선가가 아직은 기대에
못미쳐 채산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조선공업협회는 최근 상반기 수주량을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국내 조선산업은 결코 호황이 아니다"는 단서를 붙이기도 했다.

국내 조선산업의 실상이 어떤지 점검해 본다.

< 외화내빈 왜 생겼나 >

첫째로 과도한 설비증설과 작년도 불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적정량의 일감을 확보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설비는 남아도는데 일거리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국내 조선소간에 저가
수주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것이 선가의 상승을 막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조선소들이 얼마나 일감을 확보했는가를 표시하는 수주잔량을 보면 6월말
현재 현대 4백77만t, 대우 3백85만t, 삼성 3백68만t, 한라 1백80만t 등이다.

대부분의 조선소들이 적정수준이라는 2년치 작업량(연간 건조능력의 2배)을
아직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일감부족은 외국 선주들이 국내 조선소를 "봉"으로 여기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상반기중 한 외국선주가 국내 업체들과 이중계약을 맺었던 해프닝은
"상도의"를 따지기 앞서 낮은 가격에라도 수주를 해야하는 업계의 다급한
실정을 보여준다.

< 선가 얼마나 약세인가 >

올 상반기 수주한 선박들의 t당 가격은 7백73달러로 94년의 t당 9백23달러,
95년의 9백77달러, 96년의 1천13달러에 비하면 크게 떨어졌다.

90년대 초반 척당 1억달러를 호가하던 초대형 유조선(VLCC)의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는 있다지만 아직까지 8천만달러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선가가 이같은 수준을 지속한다면 조선업계는 올해도
대형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 내실화 가능한가 >

수요측면에서만 본다면 현재의 수주호조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미국 동아시아 중남미 등의 경제호전과 함께 해상물동량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20년을 주기로 일어나는 노후선박의 대체수요도 있어 70년대의
호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선가인데 현재의 완만한 회복세가 어느정도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선박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해운시황이 호전되고 있는데다 국내
조선소들이 수주잔량을 채워 정상적인 영업에 나서면 선가도 오르게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가격경쟁력의 핵심요소인 환율과 생산성도 국내 업계에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조선공업협회 조순제 전무는 "조선산업은 세계시장이 단일화돼 있어
국내 업체끼리의 과열경쟁은 무의미하다"며 "조선시장의 주도권이 우리나라
로 넘어온 만큼 공동기술개발 등으로 내실화를 다져 가는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