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별(그룹별) 여신한도제가 도입됐다.

은행은 물론 특히 기업에는 무거운 부담이 새로 주어졌다.

기업들은 3년내에 3조3천억원에 달하는 거대한 여신을 해소해야 하고
은행들도 대출 영업에서 고려해야할 사정이 많아졌다.

기업의 부도가 은행을 부실화하고 동반 파산으로 몰아가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것이 당국의 취지이지만 경제계로서는 여간 부담이 아니게 됐다.

해외영업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해외지급보증은 제외된다지만 대출 비중이
낮은 다른 은행 또는 해외로 대출선을 분산시키는등 제도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당국의 이번 조치는 분명 은행의 건전성을 제고를 1차 목표로 한 것이지만
자금 수요자인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의 대기업
정책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게됐다.

정부는 최근들어 차입금이 많은 기업에 손비인정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재무구조개선 대책을 발표한바 있다.

또 기업공시제도를 강화하고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키로 하는 등 잇단 대기업
정책을 내놓고도 있다.

여기에 다시 그룹별 여신 총액을 제한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일련의 대기업 정책들은 대부분이 오는 2000년을 실행시기로
하고 있기 때문에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우리 기업들은 전혀 새로운 환경
하에서 금융을 이용하고 사업을 설계해야 하게됐다.

이번 조치가 갖는 함의는 은행의 주인 찾아주기와도 상당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초 그룹별 여신한도제는 지난 82년의 은행법 개정으로 법적근거가 마련
되었으나 대출금이 은행 자기자본의 1백%를 넘는 기업이 26개 계열에 달하는
등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지금까지 시행이 미루어져왔던 것이다.

당시 입법취지가 민영화를 앞둔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자는 것이었던 만큼
앞으로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특정 은행에 대한 차입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이번 제도시행의 명분이기도 한셈이다.

당국은 계열별 여신한도제는 국제결제은행이 조사한 1백29개 국가중 후진국
5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조치를 정부의 기업에 대한 강압정책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당국은 또 국제결제은행(BIS)내 바젤위원회가 올해중 "은행 신용위험 관리
기준"을 마련하여 각국에 이의 도입을 권고할 방침인 만큼 더이상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기업 입장에서는 최근들어 한꺼번에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기업규제가 시작된다고 느끼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심리적 또는 현실적 반발
도 피할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일 정부가 기업들의 이런 저항과 반발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비록 그것이
선의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정부는 새겨둘 필요가 있겠다.

(정규재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