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와 증권사 직원이 합의해 불법적인 장외거래를 하다 손해를 입은 경우
어느쪽의 과실책임이 더 클까.

D건설 자금부 과장이었던 고모씨는 지난 92년 10월 B증권사 명동지점에
16.5%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채권위탁매매 거래계좌를 개설했다.

고씨는 그후 예탁금으로 30억원을 입금하고 이 돈은 전액 출금돼 국민주택
채권 9백20여만주가 회사계좌에 입고됐다.

고씨는 채권가격이 하락해 손해를 보자 2개월후 당시 거래지점의 차장이었던
김모씨에게 채권을 매각하고 그 대금을 지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씨는 그러나 당시 채권가격이 하락세에 있어 매각이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자 고씨는 채권을 출고한후 자신이 알고 지내던 채권중개업자 장모씨를
통해 매각하기로 김씨와 합의했다.

장외거래는 영업시간내에 영업소내에서 하도록 규정한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합의가 고객과 증권사 직원사이에 이뤄진 것이다.

이에따라 고씨는 다음날 영업시간이 지난 오후 5시께 채권출고의뢰서를
작성해 김씨에게 넘겼고 김씨는 전표를 작성해 채권중개업자인 장씨에게
넘겼다.

문제는 장씨가 전표를 들고 증권사 본점에서 채권 전부를 찾아가 행방을
감춰 무려 19억여원에 달하는 돈을 횡령하면서부터.

고씨는 자신은 고수익을 보장해주겠다는 증권사측의 약속만 믿고 거래를
시작했을 뿐이라며 손해책임은 불법적인 장외거래를 성사시킨 회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증권사는 그러나 당초 장외거래를 요청한 고씨에게 본질적인 손해발생
책임이 있는 만큼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반박했고 양측의 입장차이는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법원은 김씨가 불법적인 장외거래를 중개한 행위는 김씨의 개인적인 행위일
뿐이라며 이로 인한 법률적 책임까지 증권사에 지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증권거래법의 규정을 위반해 이뤄진 채권의 장외매매거래는 증권사의 적법한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장외거래 행위 자체는 고객과 증권사 직원 양자간의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적법하며 채권매각으로 인한 매매계약은 완전하게 종료됐다고
결론지었다.

법원은 그러나 증권사가 직원인 김씨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손해발생의 40%에 해당하는 과실책임을 지웠다.

물론 당초의 수익률보장 약정은 증권거래법에 반하는 불법계약으로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도 같이 내렸다.

결국 편의를 앞세워 거래안전을 무시한 투자회사는 투자원금은 물론 채권
매각대금의 절반을 날렸고 증권사도 이에 대한 책임으로 7억7천여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5년간의 송사는 매듭지어졌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