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경원과 한국은행간의 논쟁을 축약하면 금융통화운영위원회와
한국은행간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모아진다.

금통위와 한은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커다란 ''중앙은행''으로 본다면 한은의
독립성은 강화된 것이 된다.

반면 금통위를 상위의 정부기관으로, 한은을 산하의 집행기구로 해석한다면
중앙은행 독립은 오히려 후퇴한게 된다.

앞의 시각이 재경원의 견해고 뒤의 입장이 한은 직원들의 인식이다.

특히 이미 만들어진 그림을 놓고 순전히 해석만 달리하며 치열한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재경원은 "이번 방안은 금통위와 한은을 중앙은행제도에 함께 묶은 것으로
한은은 독자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얻었다"고 주장
하고 있다.

금통위의장과 한은총재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금통위=한은''이라는 등식을
강조하고 있다.

금통위가 한은 상부기관이긴 하지만 중앙은행제도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한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 임직원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본적으로 금통위와 한은은 다른 종류의 기관이고, 다른 성격의 업무를
수행한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금통위는 재경원의 직할통치를 받는 정부기구이고 한은은 금통위
로부터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 집행기구라는 불만이다.

한은측은 그 근거로 대통령이 금통위의장을 임명하기 전에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도록 돼있는 점과 재경원장관에게 금통위에 대한 의안제안및 재의
요구권을 부여하고 있는 점을 꼽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의장을 임명하기 전에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것은 사실상 금통위의장 인선에 재경원이 관여하겠다는 뜻이고 금통위에
대한 재경원장관의 각종 권한도 한은을 옥죄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금통위 업무보좌를 위한 사무국직원들을 전원 공무원으로 채우는 방안에서도
재경원의 이같은 의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재경원은 이에대해 전혀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우선 금통위 사무국이 공무원조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앞으로 금통위원이 상근조직으로 변화되는 만큼 이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하부기구''로 현재의 한은 문서부를 사무국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한은이 금통위의 집행기구로 전락했다는 주장도 사실 왜곡이라고 공박
한다.

무엇보다도 현재는 재경원장관이 자동적으로 금통위 의장을 겸직하도록
돼 있으나 앞으로는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직하므로 오히려 한은의
위상이 강화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은은 공법인으로서 정부의 권한을 직접 수행할 수 없는 만큼
금통위를 ''일정분야의 행정권을 보유하는 기관''으로 성격을 규정한 뒤
금통위의 정책을 한은이 수행하는 방식을 취한 것 뿐이라고 얘기한다.

따라서 금통위와 한은은 한몸이라는 것이다.

정부입김 배제를 바라는 한은의 입장을 감안, 재경원차관이 더이상 당연직
금통위원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도 크나 큰 양보라고 주장한다.

또 재경원장관의 재의요구권은 정부로서 논란의 가치조차 없는 최소한의
책무이행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재경원과 한은의 이같은 입장차이에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압축돼
있다.

한은은 명실상부한 중앙은행으로서의 위상을 갈구하고 있고 재경원은 한은
을 중앙은행제도내의 일정부분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사후의 모든 논쟁은 중앙은행제도 개편안이라는 핵심골격을
건드리지 않고는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