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빅뱅은 금융기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의 최대 수요자인 기업들도 거대한 변화를 불가피하게 맞게 된다.

특히 동일계열 여신한도제나 결합재무제표의 도입, 초과 차입금 손비
불인정 제도 등은 기업의 자금조달에도 빅뱅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전망
된다.

재무능력이 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정부가 발표했거나 발표할 예정인 금융개혁안들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것들이다.

우선 채찍이 되는 항목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금융개혁을 금융기관이나 금융시장의 문제로만 알아 왔던 기업의
재무 담당자들은 지금부터 철저한 대비를 해놓지 않으면 막상 제도가 구체화
되기 시작했을 때 예상치 않은 봉변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증권사의 사채 지금 보증만 해도 현재 잔액이 10조9천억원에 달하고 있다.

지급보증 업무는 증권사와 은행 보증전문기관들이 겸영해 왔으나 이것이
은행과 보증기관으로 넘어가게 된다.

증권사의 지급 보증은 당장 내달부터 자기자본의 2백%에서 1백%로 축소되고
98년 4월이면 완전히 폐지된다.

물론 1회에 한해 차환발행은 허용키로 했으나 증권사들이 이 업무에 얼마나
적극적일지는 미지수다.

증권사 사채보증을 포기하고 은행으로 갈 경우 이번에는 동일계열여신
한도제가 기다린다.

지급보증은 총여신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미 자사가 속한 계열기업군의
총여신이 한도에 차 있다면 더 이상 지급보증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경원은 이미 동일계열 여신한도를 초과하고 있는 회사가 그룹기준으로
15개그룹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은행별로 동일계열사에 대출이 많은 은행들은 대출은 물론 회사채
지급보증도 더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중 동일계열에 대한 총여신이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는 은행이 적어도 5개은행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은행은 어떻든 대출을 줄어야 하는 만큼 이들 은행을 주거래로 하고
있는 기업들은 미리부터 자금조달원을 분산해 놓는 일이 필수적이다.

초과 차입금 손비불인정제도 역시 기업 자금조달에 타격을 줄 것이다.

초과차입금 한도는 오는 30일로 예정된 공청회를 통해 결론이 나겠지만
정부는 "상당히 엄격한 수준으로 가져갈 것"(재경원 고위 관계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기업들의 차입 의존 경영을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보는 정부인
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보증요율 자율화도 신용도에 따른 자금조달 경비를 차등화할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사전준비를 요구하는 것이며 공시제도의 투명성 제고, 결합재무제표
작성 등도 종전과는 다른 치밀한 회계관리를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물론 완화되고 풀리는 대목들도 많다.

이번 정부의 금융개혁 조치중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무엇보다 해외금융에
대한 이용규제가 대폭으로 완화된 점이다.

현금 차관이 단계적으로 허용되고 외화증권 발행한도가 늘어난 점, 현지
금융 용도제한 완화 등은 이제 국제금융시장을 잘 이용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쟁력을 가름하는 또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낼 것으로 예상
된다.

그렇지 않아도 한보사건 이후 자금조달 비용 등에서 우량기업과 한계기업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제 기업들도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재무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