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이 금융개혁 단기과제들을 발표했다.

지난 4월 금개위가 건의한 내용들에 대한 정부측의 최종 정리안이다.

모두 1백30여개 항목에 해당하는 규제의 완화와 업무영역을 허문 신상품의
허용을 담고 있다.

은행과 보험 증권과 종금의 업무영역 장벽이 상당부분 해체되고 수수료와
금리의 자유화가 포함되어 있다.

중앙은행 제도 개편 등 추상적 주제가 아닌 말 그대로 금융 시장을 뒤흔들
진정한 빅뱅의 막이 오른 셈이다.

외형상으로는 지난 86년 영국정부가 단행했던 빅뱅보다 광범한 내용을 포괄
하고 있다.

또 일본판 빅뱅이 담고 있는 금융개혁에 뒤지지 않는 금융시장의 대개편을
노린 것이다.

제도보다는 시장의 변화가 골자다.

정부가 영업 구역을 정해 금융권별로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해 주던 보호
장막이 걷히는 것이며 금융기관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게
됐다.

역설적으로는 그동안 정부가 이렇게 많은 종류의 규제를 해왔는지를
되새기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개혁과제는 대략 3개의 카테고리로 요약된다.

하나는 그동안 정부의 시장개입을 정당화시켜 왔던 행정규제를 사실상 거의
완전히 풀어헤쳤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증권매매에 적용되는 수수료 체계와 일부 금리의 자유화다.

수수료는 서비스의 가격이라는 점에서 증권업계와 은행계에 앞으로 죽고
살기식 경쟁을 불러올 회오리 바람을 몰고오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하나의 분야는 업무장벽을 해체한 금융신상품을 대거 허용한 부분이다.

은행이 보험상품을, 보험이 신탁상품을, 증권사가 종금상품을 취급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금융 상품의 업종 파괴 현상이 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의 공급자인 금융회사들의 자금조달과 수요자들인 기업의 여신관행을
개편한 점도 금융시장 관행에 장기적인 충격을 줄 전망이다.

동일계열여신 한도제도를 도입한 것이나 금융채및 증권채의 발행을 허용한
점은 자금 조달과 대출 관행에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그동안 은행과 증권사들은 고객으로부터 예금을 받거나 예탁금을 받는
외에는 자금을 조달할 길이 없었다.

이같은 조치들은 앞으로 금융시장이 어떤 형태로 변모해 갈지를 속단키
어려울 정도의 큰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

어떻든 이번 조치로 정부는 금융개혁이라는 큰 산의 5부능선은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앙은행제도 개편과 감독기구 통합은 당사자인 한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있고 정치일정 등을 고려할 때 험난한 앞날이 예상된다.

또 기업재무구조 개선, 금융지주회사 허용여부, 금융회사 진입퇴출제도의
개선 등 굵직한 항목은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 항목은 금융의 일반소비자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금융개혁 단기과제들은 금융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낡은 관행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평가할 수 있겠다.

정부는 이번주에 은행소유 구조개선에 대한 정부안을 발표하는 등 나머지
개혁 과제들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간다는 방침이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