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효산업의 송기병(43) 사장은 현대자동차 구매부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95년초 시화공단에서 창업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건 카에어컨에 들어가는 부품하나가 수요에 비해
생산이 크게 모자란데 착안한 것.

그는 퇴직금과 재산을 털어 이 부품을 개발해냈다.

기술개발에 예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 바람에 라인을 설치할 시설자금이 모자랐다.

거래은행을 찾아가 설비자금대출을 의논해봤다.

은행측은 지방중소기업자금을 쓰는 게 연리 8%이하여서 가장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중진공의 추천을 받은 뒤 경기도에 찾아가 중소기업자금 지원승인을
신청했다.

각종 서류를 만드는데 걸린 세월이 꼬박 3개월.

지난 4월말 드디어 경기도로부터 승인을 받아냈다.

이 자금지원 승인을 받자 그는 오랫만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기분은 잠시뿐.

승인서만 있으면 대출받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래은행을 찾아가자 이번엔 신용보증서를 요구하는게 아닌가.

신용보증서를 끊기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찾아나섰다.

여기서 뜻하지 않은일이 또 벌어졌다.

기술신보에서 담보를 요구하는 거였다.

신용보증을 위해 정부에서 자금을 출연해준 보증기관인데도 말이다.

송사장은 기술개발을 하느라 이미 아파트를 저당잡힌 터라 담보를 구할
길이 없었다.

창구를 찾아가 사업성을 누차 설명했다.

제품을 보여주며 설득해봤다.

납품처도 확보돼 있다며 거듭 사정해봤다.

그러나 결론은 담보없인 불가능하다는 것뿐이었다.

"도대체 담보가 있으면 뭣때문에 보증기금까지 찾아오나.

애초에 은행에 담보넣고 돈을 빌리고 말지"

이렇게 항변하면서 그는 끝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지금 주변에 송사장과 같은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자들이 수없이 많다.

너무나 좋은 사업을 시작해놓고도 담보가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정말 우리나라 담보제도는 너무나 뿌리가 깊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왕성하다.

담보제는 원래 일본에서 창안돼 일제때 한국에 심어진 것.

그러나 지금은 일본보다 더 깊이 자리잡았다.

요즘은 일본도 창의성채점 등을 개발, 담보제의 뿌리를 잘라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도 담보없이 돈을 빌려준다.

그럼에도 우리보다 대손율이 훨씬 낮다.

지금 우리의 담보제는 기업들의 금융비용만 부추키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제도가 도무지 없어지지 않을까.

이는 무엇보다 은행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행은 사람과 사업성을 보고 평가하는 반면 우리는 재무제표와
서류를 보고 평가해서다.

우리도 사업성평가항목이 있긴 하지만 이것조차 모두 서류가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현장보다 서류가 더 우선되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연간 2조원의 중소기업구조개선자금을 대출추천해줄 때
전체의 40% 정도가 아무런 현장 실사없이 승인되고 있다.

이처럼 자금지원이 오직 서류에만 매달리는 한 중소기업의 사업성은
시들 수 밖에 없다.

이제 사업성의 뿌리를 잘라낼 게 아니라 담보제의 뿌리를 뽑아 버리자.

<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