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디케이트론(은행단차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풍부한 유동자금에 힘입어 금리비용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다 대출은행
기관들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수수료도 바닥권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자금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계 기업및 은행들에겐 이러한 호기도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한보사태 등 국내경제의 불안요인으로 한국채 인수를 꺼리고 있어서다.

런던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은 오히려 유동성 기준을 맞추기 위해 대출자금
을 회수하는 등 자산규모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흐름과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영국의 통신회사인 BT와 MCI는 이달초 1백억달러를 공모하면서 리보
(런던은행간금리)에 0.10%(10bp)를 얹은 금리를 제시했다.

이는 얼마전까지 초우량기업이 발행하는 장기채에 적용되던 "리보+15bp"와
비교할때 0.05%나 떨어진 것이다.

미국의 체이스 맨해턴과 JP모건사가 주간사 역할을 하면서 거둬들이는
수익률은 5%에도 못미친다.

다른 참여은행들은 이번 신디케이트론 성사로 받게되는 수수료가 1백만
달러당 기껏해야 250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량기업만 조건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폴란드 체코 등 중유럽지역에 대한 대출경쟁이 불붙으면서 이들 지역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리가 "리보+20bp"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달 중순 체코 중앙은행은 그 절반수준에 15억달러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런던시장에서 주간사들이 신디케이트 론 구성을 통해 얻는 수수료는 론
규모당 평균 0.07%에 그쳤다.

지난 94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신디케이트론시장이 자금조달자 입장에선 이처럼 좋은 상황임에도 한국계
금융기관들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출은행들이 "컨트리 리스크"를 이유로 론 구성을 꺼리고 있어서다.

한보사태이후 기업들의 잇단 부도 정국불안정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프리미엄이 올라가고 있다.

한보사태와 연루된 제일 서울 상업 조흥은행의 경우 공모를 발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신용도가 높은 한국산업은행도 한보사태이후 프리미엄이 5BP정도 얹어진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런던에 진출한 한국계 시중은행들은 요즘 한국계기업들에
빌려준 대출금을 회수하는데 정신이 없다.

유동성 기준(자산과 부채의 일정비율)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런던사무소 관계자는 "일부 은행들이 자산규모를 줄이기 위해
한국기업들에 대한 대출금의 일부를 회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비싼 단기자금을 조달하게 되면 부채비율이 높아진다.

유동성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자산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산업은행이나 외환은행처럼 정부출자 금융기관들의 경우는 상황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산업은행은 지난 16일 런던시장에서 신용도가 떨어질 경우 채권을 되사는
조건으로 3억달러규모의 채권을 공모한다고 발표, 호평을 얻었다.

이 신상품은 산업은행의 신용도가 "A3"(무디사 기준)나 "A마이너스"
(스탠더드&푸어사) 이하로 내려가면 되산다는 조건이다.

산업은행의 현재 신용도는 "A1"(무디), "AA마이너스"(S&P).

구미가 당기는 신상품이다보니 산업은행은 리보에 0.1875%를 얹은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옵션이 없었다면 금리가 5~10bp 정도는 올라갔을 것이라는게
시장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신용도가 다소 떨어지는 대부분의 한국계 금융기관들은 냉가슴만
앓고있다.

자금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영업규모마저 축소시켜야 하는 형편이어서다.

이윤우 산업은행 런던법인장은 "유통시장에서 한국채 가격이 지난 1월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자금조달에 대한 프리미엄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한국의 정세가 안정되는 않는한 이같은 악순환은 당분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런던=이성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