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직원의 권유에 따라 돈을 맡기고 증권투자를 직원에 일임해 투자한
결과 손실이 발생한 경우 투자자는 전혀 책임이 없는가.

문모씨는 지난 89년 S증권사 본점 영업부장이었던 이모씨의 권유에 따라
매달 위탁금의 1.5%에 해당하는 이익을 보장한다는 약정을 체결하고 8억5천만
원을 증권매매 위탁금으로 맡겼다.

이익이 클 경우 7대 3의 비율로 나눠가진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물론 이 계약은 위법행위다.

증권거래법은 증권사의 임직원이 수익보장을 조건으로 매매거래를 권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증권시장의 속성상 수익보장을 미끼로 고객을 유인하는 행위는
거래안전을 해칠수 있는데다 손실에 따른 책임소재를 둘러싼 잡음을 불러
일으킬수 있기 때문이다.

7개월간의 투자결과 이익은 커녕 2억여원의 원금손실로 결판이 나자 문씨는
당초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씨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원금손실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린 고객이 계약을 권유한 증권사 직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이 경우 책임은 위법한 행위를 권유한 증권사 직원에 있는가 아니면 위법
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고객에게 있는가.

문씨는 위탁계약 자체가 위법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정한 수익보장과
이익금 분배약정을 체결한 이씨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경험이 부족한 선량한 투자가로 약정고 올리기에 혈안이 돼있는
증권사 직원의 꾐에 빠져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문씨가 투자한 돈의 액수와 기간을 근거로 문씨가 증권시장에
어두운 단순한 개인투자가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문씨가 이씨에게 돈을 맡기기 전에 증권투자를 해온 사실을 바탕으로
문씨가 증권투자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
했다.

더구나 이씨가 수시로 증권거래상황을 문씨에게 알리고 매월 잔고현황과
거래내역을 공식적으로 통지한 점도 문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씨가 매도 또는 매수가 이뤄질 때마다 이를 바로 전화로 보고해 문씨가
거래상황을 충분히 파악할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6년간에 걸친 소송끝에 대법원은 증권거래가 본래적으로 위험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아래 이씨가 거래상황을 수시로 알리는 등 고객보호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이씨에게 전적인 투자손실의 책임을
지울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위법행위라고 하더라도 거래경위와 방법, 고객의 재산상태와 연령,
사회적 경험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법원은 이 경우 투자확인을 소홀히 한 고객에게 40%정도의
책임을 지우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객에게 절반이상의 투자책임이 있다는
추세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