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광주공장의 근로자들은 요즘 아주 사기가 충천해 있다.

지난 3년간의 프로세스 혁신이 성과를 거두면서 공장이 팽팽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서형근 공장장(상무)은 최근 현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하루 2교대로 풀 가동해도 수출주문을 대기가 빠듯합니다.

경기불황으로 전 사업장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만은 넘쳐 흐릅니다".

경기침체로 전반적인 판매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가전업계.

냉장고 역시 이같은 불황의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공장장이 이처럼 자신있어 하는 이유는 무얼까.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한 프로세스 혁신이 있었고 그 뒤에는 근로자와
회사간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광주공장이 하남공단에 들어선 것은 정확히 3년전.

수원 냉장고 라인을 모두 광주로 이전하기 위한 전초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광주공장이 야심적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지금의 혼류생산방식
이다.

600l급 대형냉장고가 생산되는 2라인을 예로 들어보자.

냉장실이 위에 붙어있는 모델이 지나가면 그 뒤론 물 디스펜서가 붙어있는
"L"모델이 라인을 타고 흐른다.

다음엔 냉장실이 아래에 있는 "5275"모델이 조립된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형 냉장고가 조립되는 "지펠"라인도 마찬가지다.

수출용 소형 라인과 최고급 대형 냉장고가 연속적으로 라인을 타고 있다.

같은 모델의 냉장고가 연달아 조립되는 모습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혼류가 광주공장 경쟁력의 핵심이란 걸 파악하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없다.

"미국의 GE나 일본의 마쓰시타 관계자들도 와서 보고는 부러워 하더군요.

자기네들 최정예 라인보다 오히려 낫다는 거예요"(이홍원 상무.가전본부
냉기사업부).

혼류가 채택되면서 드러난 가장 큰 이점은 생산성향상.

광주공장의 총 라인 연장은 4백29m에 불과하다.

수원공장의 경우 똑같은 생산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선 1천1백66m가
필요하다.

자연히 투입되는 인원은 줄어든다.

어떻게 기존 라인의 1/3만으로 생산성을 유지했을까.

그 비밀을 푸는 열쇠는 2층 전산실에 위치한 호스트 컴퓨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집트 판매법인이 20만대 규모의 냉장고 수주를 받았을 경우, 일단
영업에서 들어온 정보는 즉시 호스트 컴퓨터에 입력된다.

이 정보는 LAN(근거리 통신망)을 통해 자재창고와 발포라인 부품조립
라인으로 각각 전송되며 투입공정에선 입력된 정보에 따라 규격이 다른
강판을 라인에 흘려보낸다.

성형공정에선 플렉시블 금형이 기종에 따라 자유자재로 강판을 성형하며
발포라인에선 울트라센서가 발포제의 양을 조절해준다.

기종 변경에 걸리는 시간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라인에 모델이 흐르는 즉시 리얼타임으로 발포제의 양이나 형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수원공장에서라면 20여분 이상 걸리던 것을 전산제어를 통해 단축했다.

혼류방식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공정상의 혁신이다.

결과적으로 강판투입에서 냉장고 조립까지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수원공장에선 17시간 50분 걸리던 것이 2시간 50분으로 줄어든 것.

주문에서 생산계획 조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컴퓨터로 통제되는
생산기술의 승리다.

여기에는 근로자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빼 놓을 수
없다.

혼류생산은 다능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광주공장은 모든 근로자가 생산의 주체가 되는 "두레 활동"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각 두레조 별로 자율적인 생산성관리운동을 펴나가도록 했으며 이 과정에서
생산공정의 문제점은 수없이 지적되고 또 그 즉시 고쳐졌다.

"이번달부턴 최고급 모델 "지펠"을 유럽과 중동에 본격적으로 수출합니다.

해외에서 한국이 만든 냉장고가 GE 월풀 등과 당당히 겨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도 자기상표로 제값을 받아가면서 말입니다".

서공장장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선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광주=이의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