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K산업의 김모사장은 "할인점들이 최근에
할인경쟁을 하면서 너무 과도하게 공급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커미션을
거두어가 비용을 맞출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물건많이 팔아준다고 매출장려금을 내라고 하고 이품목은 더욱
잘팔리니 장려금을 또 내라고 합니다.

여기다 새로 물건들여놨다고 품목입점비를 추가하고 광고지전단에
광고한 비용도 건별로 35만원에서 1백만원씩 달라고 합니다"

그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판매대를 사용한다고 매대사용료를 또 내라고 합니다.

이걸 다합치면 매출액의 7-8%정도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우리가 물건팔려고 계약서에 도장찍은 것이니까
감수한다고 칩시다.

각종 협찬요구가 많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행사하는데 드는 경품값을 덮어씌우고 지방에 점포
문을 열었다는 명목으로 회원카드도 수십매 사달라고 합니다.

자기네가 물건 잃어버리거나 분실하고도 우리보고 채워넣으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대금을 제대로 줍니까.

80일짜리 어음을 주면서도 이자율은 연1%입니다.

앉아서 손해보는 것이지요"

이같은 김사장의 하소연은 요즘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에 갖고있는
분노를 대변해주는 것이다.

할인점들은 막강한 구매력을 이용해 제조업체에 가격인하를 요구한다.

최근의 가격파괴를 선도, 소비자복지를 증진시키고 물가안정에
효자노릇하는 순기능도 갖고있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가 경영합리화에 나서게 만들어 산업구조도
경쟁력을 갖출수 있게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와의 가격결정시스템의 순기능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체들의 불만은 가격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체들은 유통혁명의 기본은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혁해 여기서 비용을
절감하는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가격인하분을 거의 전액
제조업체에 전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종 명목을 붙여 "너무 뜯어간다"는 것이다.

까르푸의 경우 6가지 명목으로 커미션을 받고있다.

물론 이 커미션들은 계약서상에 작성되어 있어 합법적이다.

문제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1억원어치를 팔아주면 제조업체에서 많을 경우에는10%에 해당하는
1천만원을 백마진으로 거두어 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 할인점들은 정식계약서에 받기로한 커미션을 받고도 영수증도
주지않는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물론 할인점들도 할말은 있다.

프라이스크럽 관계자는 "할인점은 백화점과 달리 직원을 최소화하는
대신 가격을 낮춰 대량으로 판매를 하기 때문에 가격인하를 요구하는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조업체 관계자들은 할인업계의 이런 과도한 가격인하요구가
제조업의 경영합리화나 구조조정을 할 시간을 주지않고 곧바로 대량해고나
도산으로 몰고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제조업체가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금리 지가 임금 물류비등 요소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지금같은 상황에서 기업이 선택할 수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할인점들의 가격인하요구에 대처하기위해 직원들을 해고하는
사례도 나타나고있다.

김사장은 "지난 20년간 동고동락하던 직원 45명을 지난달에는 해고하는
수 밖에없었다"고 말했다.

김사장의 우수에 젖은 얼굴이 가격파괴의 슬픈 뒷모습으로 사라져갔다.

<안상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