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화 서울은행장 사퇴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은행은 10일 확대이사회를 열고 장행장의 사표를 반려키로 했지만
장행장은 "지난 5일 밝힌 사퇴의사에 변함이 없다"며 11일부터 아예 출근도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은행은 조만간 다시 이사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
인데 노조 등 직원들의 사퇴반대 분위기가 높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날 확대이사회는 오전 10시에 시작돼 12시35분께 끝났다.

이사회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지자 서울은행 직원들은 "결국 사표가
수리되는게 아니냐"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노조원 10여명은 "관치금융 철회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1시간동안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노조는 특히 비상임이사들과의 긴급 면담을 요구, 천문순 노조위원장이
비상임이사인 전경두 동국제강 전무를 약 15분간 만나 노조의 의견을 전달
하기도 했다.

천문순 위원장은 "은행이 가뜩이나 어려운데다 해결할 일도 많은 현 상황
에서 행장이 퇴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사회 석상에서 일부 비상임이사들은 소리를 높여가며 상당히 격한
감정을 털어놓았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비상임이사들은 "불과 3개월전에 우리 손으로 뽑았는데 사퇴문제를 논의
한다는 말도 안된다"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태 상무는 "비상임이사들이 장행장의 사퇴가 철회되지 않을 경우 모두
사표를 내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사회를 마친 직후에도 비상임이사들은 몹시 굳은 표정을 지으며 "(사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게) 창피하다, 부끄럽다"며 재빨리 자취를 감췄다.

비상임이사인 김하준 대한교원공제회 이사장은 "주총까지 미뤄가며
은행감독원의 특검결과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 행장을 선출했는데
이제와서 물러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발언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13명의 비상임이사중 9명이 참석했는데 박영헌 혜성항공
대표 우정훈 (주)정보이사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이병만 경농 사장
등은 불참했다.

<>.장만화 행장은 이날 비상임이사회 모두에 참석, 간단하게 신상발언만
했을뿐 내내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모습이었다.

장행장은 이 자리에서 한보대출 책임과 관련해 사퇴압력을 받았음을 간접
시인하고 "도덕적으로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사퇴철회를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으나 관계자들은
"확대이사회의 결의인 만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사퇴압력의 최초 진원지인 검찰이 어떤 보일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한편 서울은행 노조와 직원들은 사표반려 소식을 접한후 "지극히 당연한 일"
이라며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관치금융을 철폐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한마디씩 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금융당국의 내정인사를 이사회가 거부하다니 세상이
정말 달라지긴 달라진 모양"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표 반려라는 기적아닌 "기적"이 만들어지기까진 노조를 비롯한
서울은행 전 직원들의 합심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부점장 3백여명은 지난7일 긴급 모임을 가진뒤 9일에는 각자 역할을 분담,
관계당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펼쳤다.

이들은 청와대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등을 직접 방문해 은행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며 사표가 반려되더라도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또 일부 부실장들은 비상임이사들을 직접 찾아가 확대이사회에서 사표를
반려해주도록 간곡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택 투자신탁부장은 "은행장 개인을 위한다기보다 조직이 먼저 살아야
한다는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은행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에
다름아니다"고 설명했다.

< 이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