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서글서글하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저희 후배들을 일깨워 주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연한데,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세상
건너편으로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다니 말문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의 명으로 와서 이제 다시 그 하늘의 명을 받아 이 땅에 살아있는
이들과 잠시 떨어져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어찌 대자연의 섭리인줄
모르겠습니까.

그러함에도 그저 신변이 소슬해지며 허망해지는 심경을 가눌 길
없습니다.

선배님은 전경련의 초석을 다지며 중흥의 기틀을 잡으셨던 대형이셨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그 어느하나 여의치 못하던 시절 공업입국의 기치를
내건 전경련 사무국의 사업을 도맡아 하시며 경제계의 의견을 정부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하셨습니다.

선배님의 분려정진은 저희 후배들의 미욱함에 대한 회초리였으며 또한
든든한 디딤돌이기도 하였습니다.

선배님의 빛나는 아이디어와 섬세한 업무추진 능력은 전경련이 설립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부장으로 가시면서 드디어 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안정된 노사관계의 확립이 절실하다는
신념을 되새기며 선배님은 노사공동체의 근대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불합리한 노사제도와 관행을 꿰뚫어 보시고 개선하셨습니다.

한국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선배님의 노력은 우리 경제의 길을
밝힌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민주화가 진행되며 경제 사회적으로 거센 혼란의 바람이 불던 시기에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열어주는 햇살이었습니다.

선배님의 경륜과 통찰력은 선배님의 첫번째 직장이었던 전경련으로
금의환향하시며 더욱 돋보였습니다.

과거의 멍에가 우리 경제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을 때 선배님은 기업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온몸으로 뛰셨습니다.

기업본연의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새시대의 기업윤리를 담은
기업윤리헌장이 과연 선배님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선배님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자적 발전관계를 열어가는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노와 사, 기업과 사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가교역할을 자임하셨던
선배님께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으신 것도 기실 선배님께서 기울이셨던
노력의 만분의 일이나마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의 고귀한 뜻과 굳건한 신념을 떠올리다 보니 선배님에 대한
애뜻함에 새삼 가슴 저 깊은곳으로 부터 밀려옴을 느낍니다.

선배님! 하지만 지켜보소서.

남아있는 저희들은 선배님이 지니셨던 조화와 협력의 정신을 새겨 미쳐
마치지 못하신 일들을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풀어 나가겠습니다.

지금은 알지못할 그 언젠가 저희들도 선배님의 뒤를 따르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 무거운 어깨를 털어 버리시고 천국의 계단으로 오르소서.

하늘나라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소서.

< 손병두 전경련 상근부회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