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고 있는 "신용질서 혼란"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다.

한보철강을 필두로한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와 부도방지협약시행에 따른
어음에 대한 불신이 첫번째다.

여기에 올들어 극성을 부리고 있는 수표위조사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한
자기앞수표 기피현상이 가세했다.

현대사회에서 신용질서를 떠받치는 두 기둥은 어음과 수표다.

기업신용으로 발행되는 어음과 은행신용으로 유통되는 자기앞수표를 믿지
못한다면 신용질서가 지탱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최근 나타나는 현상들은 신용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부도방지협약 적용대상기업으로 일단 지정되면 그 기업이 발행한 어음은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채권행사도 불가능하고 법에 의해 교환에 돌려도 돈을 받을수 없다.

그러다보니 부도방지협약기업으로 적용되기 전에 어음을 돌려 채권을
상환하고 보자는 분위기 만연하고 있다.

대형부도가 어음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다시 기업부도를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 연쇄부도와 어음불신 =어음불신풍조는 부실우려기업은 물론 부실
금융기관에 대해서까지 확산되고 있다.

부도방지협약이 발효된 지난달 하순만 해도 기피 1호대상은 부도소문이
나도는 기업이 발행한 어음이었다.

그래서 부도소문만 나돌면 은행이고 종금사고 가릴것없이 보유하고 있는
어음을 교환에 돌리기 바빴다.

이는 바로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들의 자금조달난을 일으켰고 경기
침체와 함께 대기업 연쇄부도위기를 초래했다.

최근엔 일부 금융기관들이 보증을 선 회사채나 보증어음기피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은행신탁계정의 경우 종금사를 통한 C급 기업어음(CP) 매입이나 일부
종금사가 보증선 회사채인수를 아예 중단했다.

기업들이 자기신용,또는 금융기관의 신용을 빌어 발행한 어음이 더 이상
융통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따라 돈은 금융기관에만 머물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의 부도는 급증, 지난달 어음부도율(전자결제액조정전)은
장영자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82년과 같은 수준인 0.32%까지 치솟는 기현상이
연출됐다.

<> 수표위조와 수표기피 =자기앞수표 위조사건이 잇따르면서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에 대한 기피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남대문시장 경동시장등 대규모 시장은 물론 수퍼마켓등에서도 공공연히
자기앞수표를 사절하고 있다.

지난 93년 금융실명제 실시직후와 같은 현상이다.

자기앞수표를 받는 상가들도 신분증과 대조, 신분을 꼼꼼히 확인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한 상인은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의 경우 현금과 똑같이 취급해 왔으나
최근 위조수표가 판을 치면서 수표받기가 겁난다"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소액의 경우 현금이나 신용카드결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자기앞수표 발급신청이 줄어들고 있으며 자기앞수표가 발행된후
은행에 다시 돌아오는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 95년만해도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회수기간이
평균 7일이었으나 최근엔 5일정도로 짧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사정당국은 이와관련, 수표위조사범 방지대책이 조속히 강구되지
않을 경우 <>사회의 근간인 경제질서와 혼란야기는 물론 국가의 대외이미지
를 실추시키고 <>경기침체와 겹쳐 민심이 동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하영춘.오광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