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은 연일 금융감독위원회 탄생의 배경및 이에 따른 향후 변화를
예측하느라 분주한 모습.

일부 관계자들은 "스칸디나비아반도 3개국을 빼고는 금융기관 감독을 한기구
에서 전담하는 선진국은 전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원정리가 수반되지
않은 금감위 신설은 장.차관 등 고위직의 증원만 부를뿐 작은 정부라는 원칙
에도 위배된다"고 불만을 표출.

<>.국회에서 금감위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금융개혁관련 법률안이 통과되면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3차례 도전끝에 평생 소원인 금융개혁을
실현하게 되는 셈이라고 측근들이 전언.

강부총리는 지난 82년 6월부터 84년 10월까지 재임했던 재무부장관 시절
<>한국은행이 통화관리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확보해야 하며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주되 별도의 금융감독기구를 설립, 금융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금융개혁을 추진하다가 안팎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

강부총리는 87년부터 88년 민정당 국회의원 시절에도 이같이 금융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했다가 재차 실패.

강부총리는 이같은 전력을 감안, 최근 공.사석에서 자신이 "금융개혁 3수생"
이라면 불퇴전의 의지를 과시했다고.

<>.재경원 금융정책실 관계자들은 금감위 신설로 금융정책실의 해체가
불가피, 국.과장자리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명백해지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일부 구재무부 출신들은 이번 금융개혁작업에 힘을 실어준 강부총리가
구 경제기획원 출신임을 들어 "기획원의 제3차 재무부 탄압론"을 제기.

이들은 강부총리가 재무부장.차관 시절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과 함께 금융
자율화를 명분으로 이재국장 등 재무부내 주요 요직을 기획원 출신으로
기용하는 등 재무부 출신들을 물먹였다고 주장.

또 지난 94년말 한이헌 경제수석 주도로 재정경제원 통합이 이뤄지면서
기획원은 다른 부처로 직원들을 보낸 반면 기획원동기보다 승진이 늦었던
재무부 출신들은 대거 외유를 떠나는 등 불이익을 컸다고 강조.

<>.한편 금융개혁을 신정부로 넘길 것같던 분위기가 급반전된데는 청와대의
독촉 외에도 박성용 금개위원장의 배수진이 한몫했다는 후문.

박위원장은 금개위안이 작성된 지난주 강부총리를 만나 만일 금개위가
더이상 할 일이 없다면 바로 사퇴해버리겠다며 강경론을 폈다는 것.

< 박영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