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계양산의 푸른 신록과 바다가 멀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제법 낭만적 풍경이다.

그러나 30만평 공장내부 움직임은 딴판이다.

정밀하게 돌아가는 조립라인, 분주한 근로자들의 손놀림, 규칙적인 소음.
공장안은 마치 장엄한 군사 퍼래이드를 보듯 활기차고 열정적이다.

"다들 불황이라고들 하죠. 그러나 불황은 곧 역전과 도약의 호기도 되지요"

최광옥 생산총괄 전무가 들려주는 한마디는 이 공장의 분위기를 함축한다.

사실 올들어 국내 자동차업계는 전에없는 판매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승용차시장 성장률이 지난 80년도 이래 처음으로 전년대비 마이너스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돌파구로 삼았던 수출도 기대만큼 제구실하는덴 역부족이다.

가격경쟁력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국언론에서조차 어려움에 봉착한 한국자동차산업의 구조재편을
들먹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자동차의 경우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올들어 잇단 신차출시로 상대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긴 하지만 업계 전반의
환경이 최악의 상황인 만큼 내부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은 다를바 없다.

"그렇다고 외부환경만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결국
제조단계서부터 코스트 경쟁력을 낮춰야만 살수 있다고 판단했죠. 볼트
하나라도 아끼고 아끼기로요"(경영혁신총괄담당 서정진 고문)

부평공장 맨 중앙에 위치한 승용1공장 입구.

"슬램덩크 30억 원가절감"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농구에서 덩크슛처럼 짧은 기간에 원가줄이기 목표를 달성하자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를위해 이 공장이 보이고 있는 몸부림은 처절할 정도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에너지 절약을 위해 형광등 하나하나에 별도 스위치를
달았다.

종전에는 라인에서 작업중 손상된 부품은 그냥 폐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원해 다시 사용한다.

신차의 주행테스트에 들어가는 연료량도 종전의 14리터에서 12리터로
낮췄다.

이런 캠페인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평공장 전 직원들에게는 "한번 해보자"는 의식이 강하게 형성돼
있다.

승용1공장에서 만난 근로자 강희원씨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모두가 신화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의지로 뭉쳐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대우자동차의 극기정신은 비단 원가절감 차원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품질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품질 혁신운동으로도 나타났다.

대표적인게 "라인스톱제".

라인 한 곳에서라도 불량이 발견되는 즉시 전 라인을 스톱,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는 것이다.

"결국 품질 기술 생산성이라는 3박자가 골고루 조화를 이뤘을때라야 선진국
의 높은 벽을 깰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일하는 사람들의 마인드 혁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경영혁신기획팀 주문종 부장)

이런 노력의 결실로 부평공장은 최근 가동률과 생산성이 부쩍 높아졌다.

올들어서만 1백% 가동률을 보인 경우가 3차례.

지난해 1년동안 단 한차례였음에 비하면 달라진 모습이다.

이와함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3개 신차종 연속출시도 성공시켰다.

주위에서는 "과연 성공할까"라는 의문도 가졌지만 대우는 신차들을 출시
하자마자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가고 있다.

여기에다 올 중반께면 3개 신차종이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대망의 미국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요즘은 근로자들이 앞장서 휴일특근도 마다않습니다. 밤늦게 퇴근하며
술한잔을 걸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자연스레 "신화"를 얘기합니다. "영업은
생산현장에서부터 이뤄진다"는 의식이 모든 근로자들의 머리에 뿌리박혀
있는 한 대우의 신화는 결코 멀지 않았습니다"

조립1부의 김기창 차장은 요즘 대우의 "신바람"나는 불황극복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들려준다.

< 정종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