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와 기업의 설비투자 위축이 지속되며 기계업계는 좀처럼 불황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는게 불행중 다행"이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기업의 투자활동을 앞서서 예고한다는 기계경기가 침체됐다는 것은 일부
업종의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전체산업이 아직까지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1.4분기에 기계산업의 내수는 3백17억달러로 전년동기보다 0.6%
감소했다.

만성적인 무역적자의 주범이라는 오명과는 달리 수입액은 92억달러로
2.2% 줄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위축됐음을 보여주는 것.

그나마 일반기계의 생산액은 1백12억달러로 소폭 증가했는데 최근 일부
업종의 경기회복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기계는 공작.냉동공조.건설광산.섬유.풍수력 관련기계로 기업생산과
직결되는 산업용 기계제품들이다.

기계산업의 경기가 이처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우선 주요
수요산업인 자동차 등에서 불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으로 업계는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의 잇단 부도설 <>자금시장의 경색 <>내수위축 및
수출부진에 따른 재고누적 <>한보사태 등 정치적인 불안감 등이 겹쳐
기업의 투자마인드가 극도로 위축된 것이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업계는 기계산업의 경기회복은 빨라도 올하반기에 들어서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의 근거로 업계는 우선 하반기부터 외환대출 국산기계구입
지원자금,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자금 등 각종 정책성 자금이
지원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보통 대기업의 설비투자 결정이 3월 이후에 이뤄진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둘째는 한보사태 등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정치적인
사건.사고들이 어느정도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경기회복의 조짐이 단순한
재고해소의 결과가 아닌 구조적인 차원으로 자리잡으려면 역시 기업의
투자마인드 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계공업진흥회 조사연구실 양정환 실장은 "기계산업 경기는 3.4분기
들어서야 눈에 띄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기업의 설비
투자가 재개돼야 기계산업의 경기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출부문에서는 여전히 고전이 예상된다.

주요 수출지역인 유럽과 미국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데다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약세로 가격경쟁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만을 중심으로 개발도상국들이 저가제품으로 국내 업계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으며 유럽국가들이 ISO 등 각종 인증기준을 까다롭게 만들어
수출장벽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수출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업체들이 중국 필리핀 동구권 등을 중심으로
현지딜러망을 강화하는 등 내수부진을 수출로 타개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으나 기술개발 및 가격경쟁력의 회복 등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하반기의 수출회복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