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폴크스바겐 비틀, 영국의 오스틴 7, 이탈리아의 피아트 500, 그리고
미국의 포드 T형 등은 그 나라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도 42년간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받은 차가
있었으니 바로 시트로엥 2CV가 그것이다.

이 차는 1936년 시트로엥을 인수한 미쉐린사의 매니저인 피에르 볼링거의
지시에 의하여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기술책임자였던 모리스 보글리에게 한마디로 "지붕이 있는
네바퀴의 자동차"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은 많은 프랑스 농부들을 위해 싸고 튼튼하면서도
다루기 쉬운 실용적인 자동차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에 전설적인 트락션 아방을 만들었던 팀이 다시 모여 1937년 소형차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개발의 목표는 프랑스 국민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부를 위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이를 위해서는 뒷좌석에 닭 두마리 정도는 실을 수 있고 50kg의 감자를
싣고도 시속 60km 정도를 달릴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비가 올 때는 달걀이나 농작물이 비에 젖지 않도록 접었다 펼 수
있는 우산같은 지붕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계란을 싣고 프랑스의 울퉁불퉁한 논길을
무사히 달리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논길을 조용히 달릴 수 있도록 앞뒤에 모두 독립 현가 방식을 적용
하였다.

엔진은 수랭식이며 배기량 3백75cc의 2실린더 엔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이 자동차는 생산이 되지 못하고 연구만이
계속됐다.

결국 전쟁 후에 3백50cc 배기량의 공랭식 2실린더 엔진으로 바뀌어 2CV라는
이름으로 1948년 파리 모터쇼에 모습을 드러냈다.

값싸게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치장은 최대한 줄여 모습이 다소 초라해
보이지만 4도어의 보디라인은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지붕을 천막으로 덮어 말 수 있도록 해 맑은 날에는 열어 젖히고 비오는
날에는 닫는 구조로 낭만이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9마력의 엔진이 힘에 부치는 듯 최고 시속은 64km 밖에 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연비는 5백8kg의 가벼운 차체 덕분에 1리터에 23kg을 갈 정도로
뛰어났다.

그후 2CV는 1954년까지 생산해 오다가 배기량이 4백25cc로 증대되면서
1957년에는 연간 10만대를 생산하는 국민차로 자리잡게 됐다.

차체 디자인도 새롭게 바뀌면서 여러가지 모델을 내 1982년까지 생산이
이어졌다.

그러나 유럽의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와 안전문제로 인하여 1982년에는
프랑스에서 생산이 중단됐다.

그후 포르투갈로 생산지를 옮겨 1990년까지 생산이 되면서 프랑스 농부의
농작물을 운반하는 자동차에서 세계인이 즐겨타는 퍼블릭카로 팔려 나갔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개발 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