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가 불황에 허덕인다는 소리는 말짱 거짓말입니까"

4월중 자동차 판매실적통계를 살펴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제기하고 있는
의문이다.

자동차업계가 발표한 4월 한달간의 내수판매는 15만3천여대.

경기가 좋다던 지난해 4월에 비해 5.1%가 증가한 것이다.

어쨌든 통계상으론 호황을 누린 셈이다.

업체별로 통계를 발표하던 지난 2일 각 업체 홍보담당자들은 제 실적은
발표하지 않은채 언론사 자동차담당 기자들에게 경쟁업체들이 발표한 판매
실적을 묻는데 급급했다.

통계를 먼저 공개해 "불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눈치 싸움은 주변에서 보기에도 딱할
정도였다.

오후 3시가 돼서야 대우가 내수실적을 "창사이래 최다"인 4만대로 발표했다.

현대는 이 수치를 입수한 뒤에야 서둘러 4만7천대를 팔았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대우는 현대의 실적이 "하루사이에 1만대를 추가시킨 것"이라고
비난했고 현대는 "대우의 부풀리기식 발표를 우려해 발표를 늦췄을 뿐"
이라며 대우에 책임을 떠넘겼다.

"4월 승용차시장 1위"를 선언했던 대우와 "전차종 1위 고수"를 내세웠던
현대가 벌인 자존심 싸움은 이렇듯 한심한 사태로 발전됐다.

문제는 이렇게 발표된 수치가 맞을리가 없다는 것.

통계상으로는 호황인데 공장을 빠져 나온 차량은 또다른 빈주차공간을 찾아
헤메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는 지난 4월초 "자동차업계의 불황은 불합리한 세제와 규제 탓"
이라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었다.

하지만 수치상의 실적으로는 이렇듯 분명히 잘 팔리고 있는데 정부인들
어떻게 지원의 당위성을 느낄 수 있을까.

명분과 실리없는 자존심 싸움이 자동차업계 스스로의 발등을 찍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안타깝다.

김정호 < 산업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