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찬 코오롱그룹명예회장이 예전에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자장면을 즐겨 시켰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보스가 자장면을 시키는데 직원들이 "요리"를 먹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화섬업계 경영인들을 두고 "쫀쫀하다"고 말할 때 으레 나오는 얘기다.

이렇게 통이 작다보니 투자도 망설이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업다각화
기회를 놓쳐 "섬유사양론"이 나왔다고들 한다.

물론 이 얘기는 화섬경영인들이 검소한 원칙주의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도 해석된다.

지금의 화섬사장들이 입사할 당시만 해도 섬유는 최고의 업종이었다.

많은 엘리트기업인들이 화섬을 통해 배출됐다.

이들은 "실"을 다루는 만큼 섬세하고 예리해서 "숫자"에 강하다.

그게 과하다보니 "쫀쫀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이런 만큼 대개는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파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화없이도 화섬은 호황을 구가해왔다.

수요자인 직물업체들은 화섬원사를 받아 물감만 들이면 어디든 팔아치울
수 있었다.

화섬업체들도 대만 한국 일본이 장악했던 세계화섬시장에서 어려움없이
원사를 수출할 수 있었다.

이때문에 화섬이 수출기여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했고 한때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만큼 "내부단속"만 잘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자연히 과감한 다각화보다는 보수적인 경영이 몸에 밸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에 익숙지 않은 화섬사장들은 이제 안팎으로 변화의 요구에 휩싸여
있다.

위로는 일본 등 선진국들, 아래로는 값싼 노임을 바탕으로 물량공세를
펴고 있는 중국 동남아 각국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있는 게 바로 우리나라
화섬업계의 현실이다.

95년까지만해도 대부분이 흑자였지만 지난해에는 상당수의 회사들이
섬유부문에서 적자를 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업계전반에 감돌고 있다.

화섬업계를 둘러싼 이런 환경변화는 좀더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을 요구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화섬경영인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화섬사들은 보수의 옷을 벗어 던지고 "탈섬유"로 거듭나야하는 과제를
안게됐고 이는 동시에 화섬사 사장들의 몫이다.

고임금과 저효율로 추락한 경쟁력을 빠른 시간내에 되찾는 것이
화섬경영인들의 과제다.

소극적인 자세로는 도태되고 만다.

화섬사장들은 이제 더이상 "실"을 뽑는데만 만족할 수 없다.

사업구조를 부가가치 높은 비섬유부문으로 확대하는 작업을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작년의 경우 대개의 화섬사들이 섬유부문에서 적자를 봤지만 비섬유부문을
확대한 곳들은 전체적으로는 견조한 흑자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수익구조를 개편하면서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비용을 줄이는 것은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

임원들의 급여를 일부 반납하기도 하고 신규사업을 벌일 때도 종전의
인원을 유지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화섬경영인들은 엄청난 "짠돌이"가 될 수밖에 없다.

직원들도 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경영층의 리드에 따라주는
분위기다.

이같은 동향은 일본과 같은 고품질의 다양한 제품에 금방 접근하기는
어렵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구조로 화섬업계의
구조를 한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화 마인드도 최근 화섬업체 사장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더이상 국내에 국한된 경영으로는 버텨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효성그룹이 수년전부터 임원들에게 외국어교육을 의무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화섬업체 사장들은 지금 "독선생"을 놓고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화섬사 사장들은 이처럼 전환기를 맞은 화섬업을 종전의 "효자산업"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들은 화섬을 "사양산업"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여태까지도 효자산업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때문에 비록 날마다 거래업체들의 부도와 폴리에스터 원료가격추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지언정 꿈만은 야무지게 "화섬선진국"을 그리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 채자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