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형승용차 시장은 현대자동차의 독무대였다.

기아가 포텐샤로, 대우가 아카디아로 대형차의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아무래도 현대의 그랜저나 다이너스티와의 경쟁에는 힘이 부쳤던게 사실이다.

그 시장에 기아가 엔터프라이즈로 출사표를 던졌다.

기아는 엔터프라이즈로 국내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물론 수입차의 침범을 막아내는데 선봉장이 되겠다는 당찬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광고에 "한국대표"라는 헤드카피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엔터프라이즈는 말그대로 최고급 차종이다.

포텐샤의 후속모델이 아닌 상급모델.

따라서 외관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무척이나 고급스럽다.

우선 전장이 5m가 넘는다.

국내에서 양산되는 승용차 가운데 가장 긴 몸집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이 직선을 기조로 하고 있지만 곡선이 간간이 사용되면서
권위와 부드러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특히 앞부분의 창호무늬 라디에이터 그릴과 큼직한 헤드램프의 조화는
대형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족함 그대로다.

신차발표회에 들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만지작거리며 극찬했던
옆유리창의 곡선은 자칫 둔해보일 수도 있는 대형차의 외관에서 날렵함을
발견하게 한다.

뒷부분을 너무 깎았다는 감이 들지만 외양은 일단 합격점.

엔터프라이즈는 오너용이 아니다.

따라서 시승은 뒷좌석에서 시작했다.

우선 도어는 하드톱형이다.

유리창을 감싸는 프레임이 없다는 얘기다.

대형차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형태이긴 하지만 말끔해 보여 좋다.

뒷좌석은 우선 조수석의 머리 보호대를 앞으로 접을 수 있도록해
시야가 탁 트여 있다.

전동시트나 냉장고,좌석을 덥혀주는 내장열선은 최고급형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장치이지만 뒷좌석에 내장된 안마기나 공기청정기 기능이
포함된 에어컨등은 색다르다.

가운데 팔걸이에는 오디오나 TV,공조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스위치들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다.

밖에서 볼때는 좌석이 좁아보이지만 막상 실내에 들어서면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후륜구동이어서 프로펠러샤프트가 지나가는 뒷좌석 밑바닥의 한가운데가
불룩해 다소 불편할 뿐이다.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계기판은 수많은 기능을 조작할 수 있지만 매우 간결하게 처리돼 있다.

중형급 이하의 차량이 항공기 조종석처럼 운전석 쪽으로 계기판의
방향이 조정돼 있는 것과는 달리 일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뒷좌석 승객 위주의 설계다.

타고 내리기가 수월한 것은 시트는 뒤쪽으로, 운전대는 위쪽으로 옮겨져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키를 키뭉치에 꽂기만 하면 시트와 운전석은 기억시킨 체형대로 제자리로
찾아온다.

엔터프라이즈는 3천6백cc급 V형 6기통엔진을 심장으로 하고 있다.

엔진소음은 실내에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급가속 능력.

정지상태에서 2백m를 가는데 고작 11초가 걸릴 뿐이다.

추월가속도 뛰어나다.

최대출력 2백30마력의 엔진이 시속 2백30km의 최고속도를 쉽게 내준다.

물론 아산만공장 주행시험장에서 달려본 결과다.

급가속력이 좋아 곡선주로가 많은 자유로에서도 최고속도를 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서스펜션은 부드럽게 조정돼 있다는 느낌이지만 가변댐퍼시스템(ADS)이라는
색다른 장치가 저속에서는 부드러운 맛을, 고속에서는 딱딱한 맛을 준다는
설명이다.

다만 트렁크는 불만이다.

뒷좌석과 트렁크사이에 냉장고를 넣느라 트렁크가 작아졌다.

어쨌든 엔터프라이즈는 기아 승용차 라인업에서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낼 "괜찮은 작품"이다.

이제 성공여부는 기아의 영업력에 달려 있을 뿐이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