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부도 삼미부도등으로 연쇄부도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최악으로 치닫고있다.

그간 상장기업발행 어음의 경우 담보없이도 할인이 이뤄져왔으나 이제는
담보를 추가제공해도 대출이 거부되는가 하면 단기어음까지도 할인이
되지않는등 중소기업들의 어음할인받기가 극도로 어려워지고있기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들이 받는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바꿔주든가
현금결제비중을 대폭 높이는등의 획기적인 조치가 따르지않는한 현재의
중기연쇄부도를 피할수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있다.

이달들어 25일 현재까지 부도난 2천5백여 개업체중 4분의 1인 5백여
업체가 물품대금으로 장기어음을 받았다가 어음할인을 받지못하는 바람에
연쇄부도난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이들업체들은 모두 제품을 열심히 생산해 어음을 받고 납품했으나
현금화가 안된 이유만으로 쓰러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있다.

게다가 한보부도사태이후 중소제조업체들이 대기업에 물품납품대금으로
받는 어음의 평균 만기일이 종전 95.3일에서 한보부도이후 1백8.1일로
늘어나면서 중소기업들의 어음할인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있는 상황이다.

서울 영등포에서 금속업을 하고있는 김용식 사장은 최근 거래은행의
지점에 60일짜리 어음을 할인 받으러갔다 "튼튼한 대기업그룹이 발행한
어음이 아니면 한도내 어음이라도 할인을 해주지 말라는 본점의 특별
지시가 있었다"는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했다.

김사장은 "기존에 할인받던 어음을 은행에 가져가도 요즘은 전혀 대출이
되지않는다"면서 "은행이 문을 꼭꼭 닫아놓고있어 멀쩡한 중소기업도
쓰러지게 생겼다"고 한숨지었다.

은행들이 이처럼 대출을 중단하고있는 것은 20여개 중견기업의 부도설이
나돌면서 위기감이 증폭되고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부도나고 상장기업이 1.8개월만에 하나씩 쓰러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금을 풀겠느냐는 것.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담보를 제공해도 어음할인이 되지않는 현상은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담보대출도 묶이게돼 담보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어음할인을 받지못한 중소기업들은 급전을 구하기위해 사채를
찾고있으나 사채시장마저 경색돼 B급어음은 쳐다보지 않는 실정이다.

인천남동공단에 소재한 전자부품업체의 남찬우사장은 최근 돈을
융통하기위해 사채시장에 갔다 실망만 하고 돌아왔다.

사채시장에서도 자금사정이 좀 좋지않다는 소문이 떠돌거나 한보 삼미와
거래관계가 있는 기업이라면 대출했던 돈도 회수하려든다는 것이 남사장의
얘기이다.

한보부도사태이후 갈수록 높아지고있는 어음결제비중도 중소기업을
어렵게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있다.

더구나 어음의 만기일마저 길어지고있다.

중소기협중앙회에 따르면 최근 중소기업이 납품대금을 어음으로 받는
비율이 이미 70%를 넘어선 데다 어음수취기일을 포함한 결제기간이 대부분이
1백30일을 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한국은행의 당좌거래정지업체현황에 따르면 이달들어 20일까지의
부도업체수가 서울의 3백44개 업체를 포함 1천개에 달하는등 지난해보다
두배가까이 늘어나 중소기업들이 자금회전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중소기업인은 "요즘 대기업도 돈을 구하기힘든 마당에 중소기업이
오죽 하겠느냐"면서 "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오는 4,5월께 중소기업의
자금대란으로 부도업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섭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