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경영인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국제감각이다.

국내에서 건조한 선박의 90%가 해외에서 수주한 물량이다.

한건 계약했다하면 보통 1억달러에 이르는 외화를 그것도 현금으로
벌어들이는게 조선업이다.

그만큼 수출역군으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조선업의 경기를 좌우하는 세계 해운업계의 거물들과 평소 사교도
잘해놓아야 하는 민간외교관이기도 하다.

조선업계 경영진은 모두 서울대 동문이다.

김정국 현대중공업사장, 이해규 삼성중공업사장, 송영수 한진중공업사장
등 주로 법대출신 사장의 뒤를 이어 최길선 한라중공업사장 등 기술인
출신이 차세대 경영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울산 현대중공업을 이끄는 라인업은 김정국사장과
조충휘 부사장이다.

김사장은 66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92년 회장자리까지 오른 건설통이다.

93년3월 잠시 인천제철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그해 8월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부임했다.

중공업엔 회장 직책이 없어 대외적인 타이틀은 사장이지만 현대그룹 6인
운영위원회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중진이다.

보스기질이 강하면서도 소탈한 성격을 가진 그는 요즘도 불쑥 조업현장에
나타나 근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게 취미다.

근로자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김사장은 너털거리는 웃음소리 때문에 노조원들에게 "헐헐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우중공업은 윤원석 회장의 총괄지휘하에 신영균 사장이 조선부문을
담당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윤회장이 주로 해외를 돌아다니며 수주영업에 전념한다면 신사장은 안방을
꼼꼼히 챙기는 콤비플레이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한국은행 출신인 신사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금융통"이다.

78년 대우조선공업(94년 대우중공업으로 흡수합병)에 입사한 후에도
오랫동안 국제금융업무를 담당했다.

신사장은 자금 기획 관리 등 주요부서를 두루 거친 뒤 95년 관리본부장에
올랐다.

그해 임금협상을 무난히 타결지으며 전무에서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삼성중공업은 이대원 부회장과 이해규사장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중공업 항공 시계 등 삼성그룹내 기계소그룹을 총괄하고 있는 이부회장을
이사장이 보좌하는 형태다.

이사장은 "서울대법대 조선공학과" 출신이다.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전문기술자 못지않게 조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고
이부회장이 붙여준 별명이다.

제일제당에 입사, 전자 정밀공업 항공 등을 거쳐 90년에야 중공업
대표이사부사장으로 조선과 연을 맺었지만 한번 일에 빠지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라중공업을 이끌어가는 강경호(강경호)부회장과 최길선사장은 모두
조선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최사장은 올해초 한라호의 선장에 오른 막내이지만 조선공학을 전공,
국내 조선업계에 기술인 사장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장본인이다.

현대중공업에서 20여년간 근무하다 95년 한라중공업 인천조선사업본부장
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삼호조선소 건설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송영수 한진중공업 사장은 지난 92년부터 조선협회 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대한항공 한진 한진해운 등 한진그룹내 주요계열사를 거쳐 89년부터
한진중공업을 이끌어온 조선업계 최고참사장이다.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원칙주의자란 평.법정관리를
받던 회사를 지난해 정상화시켰으며 가스공사의 2차 LNG선 발주땐 막판에
수주경쟁에 참가, 수주를 성공시키는 경영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