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이나 지점장이 바뀔 때를 조심하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은행장과 지점장이 새로 취임한뒤 부도기업이 급격히 늘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엔 한보철강과 삼미그룹 부도로 부도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는데다
정기주총을 끝낸 은행들이 새로운 진용을 갖춰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새로 취임하는 은행장과 지점장은 아무래도 새로운 마음으로 업무를 대하게
된다.

기존 거래업체와 아무런 "거래"도 없어 여신회수나 부도처리도 한결 가볍게
결정할수 있다.

기업주나 기업체의 사정을 빤히 아는 지점장들이 정에 이끌리기 쉬운 반면
새로운 지점장들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수 있다.

그래서 기업들은 은행장과 지점장급 인사철인 1~2월과 7~8월이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인식되고 있다.

연초에 어음 부도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유시열 제일은행장은 지난 7일 취임한뒤 보름도 안돼 삼미특수강과
한보건설을 과감히 부도처리했다.

정지태 상업은행장도 은행장 취임 첫해인 93년 한양과 봉명그룹을 정리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부도기업과 "관련성"이 적기 때문에 이같은 과단성을 발휘할수 있었다는게
금융계의 해석이다.

또 덕산 우성건설 한보철강 등 굵직한 업체들이 주로 1~2월에 부도처리된
것도 "정치적인 이유" 외에 은행장이나 담당임원들이 임기를 앞두고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 일선지점장은 "새로 지점장으로 나가면 투명한 상태에서 업무를 취급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라며 "아무리 오래된 거래기업이라도 전혀 안면이 없기
때문에 부도결정을 쉽게 내릴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중소기업 사장은 "공들여 지점장과 관계를 맺어 놓으면 2~3년만에
바뀌고 만다"며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은 인사철마다 긴장할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하영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