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삼미 2세들-."

삼미그룹이 창업 43년만에 몰락의 길로 들어선 뒤안엔 창업주 고 김두식
회장의 2세인 현철(47) 현배(39) 현기(37)씨등 3형제의 비운이 드리워져
있다.

이들 형제는 지난 80년 김전회장이 급작스레 별세한후 물려받은
삼미그룹의 수성에 결국 실패해 비극의 주인공들로 남게 됐다.

우선 장남 현철씨의 경우 그룹회장을 맡았던 80년부터 95년까지
최고 경영자로선 위기의 연속이었다.

현철씨는 이 15년간 경영위기를 수습하는 데 급급해 최고 경영자로서의
어떤 성취감은 거의 느낄 겨를이 없었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철씨를 괴롭힌 첫번째 위기는 2차 오일쇼크의 여파가 남아있던
지난 84년.

이때 삼미는 도산위기에 몰려 현철씨는 그룹의 상징이었던 삼일빌딩과
프로야구단을 매각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이후 80년대말 특수강 경기호전으로 숨을 돌릴만 해졌을땐 마침
인수한 북미법인등이 4년 연속 적자를 내 애를 먹였다.

이 북미법인 인수는 삼미그룹 몰락의 시발점으로 분석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서도 특수강 경기는 좀처럼 불붙지 않아 결국 95년엔
동생(현배씨)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자신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고
만다.

그는 현지에서 북미법인 경영에 전념했지만 현재까지도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했다.

2남인 현배씨도 비운의 경영자이긴 마찬가지다.

형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은 후 그가 맡았던 역할은 주력 계열사
공장의 매각이나 법정관리 신청등 대부분 "악역"이었다.

현배씨 역시 무너져 가는 그룹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연명시키려고
끝까지 안간힘을 다했지만 결국 선친이 일궈놓은 기업을 자기 손으로
포기해야 하는 비운을 피할 수 없었다.

또 막내인 현기씨도 부친 작고후 삼미유나백화점 부사장으로 형들을
돕다가 외화도피혐의로 구속돼 형사처벌을 받는 오명을 안았다.

그는 이후 그룹 경영에서 완전 손을 떼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현기씨는 현재 닭고기 패스트푸드점인 "케니로저스터" 체인을 캐나다와
미국에서 운영중이다.

< 차병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