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는 "당초취지"와 "경제살리기"의 접점에서 보완됐다.

과거에 벌어들인 "검은 돈"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처리하되 앞으로 발생할
"구린 자금"은 추후 입법될 자금세탁방지법을 동원, 강도높게 제재하는
방향이다.

이번 정부의 결정은 지난 93년 8월 12일 대통령 긴급명령에 의해 실시된
금융실명제에 담겼던 "가진 자 쥐어짜기"라는 사정적 요소가 시행 3년
7개월여만에 대폭 완화된다는 점에서 소위 문민정부 최대 개혁조치의 후퇴
라고 볼수 있다.

특히 오는 5월 금융소득종합과세 첫 신고를 앞두고 종합과세 최고세율을
선택하면 국세청에 자료를 통보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거액금융자산가의
불안심리를 진정시키기는데 촛점을 맞추었다.

물론 정부가 과거 노태우 전태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드러났던 금융실명제의
취약점(돈세탁을 부탁한 사람은 처벌한 근거가 없다)을 뒤늦게나마 자금
세탁방지법 제정으로 보완하기로 결정한 만큼 금융실명제의 완성을 향한
발전과정이라고 평가할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금융실명제의 각종 벌칙규정을 완화한데 따른 "부유층
감싸안기"라는 비난을 의식, 금융거래에 대해서는 제제를 풀어주되 검은
돈을 철저히 막겠다는 이중전략을 택한 것으로도 볼수 있다.

정부가 시민단체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제를 이같은 방향으로
수정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도 부작용없이 경제활력을 높일만한 마땅한
대안이 금융실명제 보완이외에는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중소기업 창업및 증자자금, 창업투자조합등 벤처자금, 중소기업지원
금융기관에 대한 출자자금등의 경우 한시적으로 일정수준의 과징금을 부과
한뒤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하기로 한 결정은 어떻게 하든지 지하자금을
양성화, 경제살리기에 보탬이 되게 하겠다는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갖고 탄생했지만 경기불황국면이
장기화되면서 현실적으로는 마치 만병의 근원인양 지적돼 왔었다.

과거에는 합법적으로 자신의 금융자산을 빼돌릴수 있었으나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실명전환 의무가 신설되고 거액전환가에 대해서는 자금
출저조사를 하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과소비 중소기업 도산 경기위축 자산가의 심리적 불안 저축감소
등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조치로 경색된 분위기를 푸는데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과연 지하자금이 얼마나 양성화될지는 의문이다.

이미 빠져 나올 만큼은 다 나갔고 중기 출자등에도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
이다.

이미 과징금을 낸 사람과 형평성 시비가 일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정책의 신뢰도에 흠집을 냈다는게 큰 상처다.

< 최승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