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는 벌써 과거형이 되가고 있다.

자신을 깃털이라고 불렀던 몇사람 국회의원과 2명의 은행장이 구속되고
사건은 두껑을 덮었다.

내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봉했던 두껑이 다시 열릴 것인지, 아니면
그때는 모든 것이 이미 "화해"되고 난 다음일 것인지도 알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6조원의 부실 기업 한보 문제는 세월이 흘러도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서기 2000년 3월.

앞으로 3년후의 어느날을 생각해 보자.

장소는 제일은행장실.

연초 연임에 성공한 유시열 행장과 상임이사들의 구수회의가 한창이다.

안건은 "한보철강 당진공장에 대한 이자유예기간 연장문제".

한보철강은 이미 지난 98년초 새 정부가 들어선 다음 <><>그룹으로 인수된
상태였다.

당진 인근의 일관제철소 건설 부지 1백만평과 함께.

인수조건은 여신액의 50%에 대해 2000년까지 이자를 유예해주기로 했던 것.

그러나 공장 정상화가 지연되면서 인수기업은 이자유예를 1년 더 요청해
왔다.

"더이상은 어렵다.

지난 97년 한보철강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느냐.

한보 부도후 추가지원 자금까지 합하면 1조5천억원가량이 사실상 무수익
자산으로 묶여 있는데 이자유예기간 연장은 말도 안된다"는 명분론과 "이왕
이렇게 됐는데 다시 부도를 낼수는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이 맞선채 시간만
흘러갔다.

이러는 사이 관계기관은 다시 대책회의를 갖고 그때의 4개 은행들도 벌써
모임을 갖고 있다.

한보를 인수한 <><>그룹에 대한 특혜공방은 다시 벌어지고.

이상은 한보철강이 부도난지 4년이 되가는 2000년말의 가상시나리오다.

한보사태가 일반인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져가는 시기다.

정태수 총회장으로선 한보철강이 필생의 업이었던 만큼 회환과 후회가
많이 남기도 하고 말그대로 "회고"를 할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제일은행 등 채권금융기관들에게 한보사태는 4년이 지난후에도
여전히 "현존하는 악령"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한보사태가 남긴 과제는 많다.

말도 많고 숱한 의혹도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과연 한보사태의 "몸체"는 무엇인가.

홍인길 의원이 진짜 배후였을까.

은행들이 무엇을 믿고 5조원이나 되는 돈을 선뜻 정총회장에게 내주었을까.

정총회장은 비자금으로 조성한 2천1백36억원중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2백50억원을 어디에 썼을까.

은행들의 자체 판단만으로 한보철강의 부도를 결정한 것인가.

"젊은 부통령"으로까지 묘사됐던 김현철씨는 어느 정도 관여돼 있을까.

89년 아산만 매립허가가 나고 95년 코렉스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과연
정부당국자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단 말인가.

4개 채권은행의 전현직 은행장중 왜 신광식 제일은행장과 우찬목
조흥은행장만이 구속됐을까.

두 행장만이 정총회장에게 밉보였다는 말이 사실인가.

이형구 전 산업은행 총재가 검찰청을 유유히 걸어나온 이유는 무엇이며
검찰은 정총회장을 상대로 어떤 "거래"를 했을까.

검찰수사가 끝나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런 의문들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게
분명하다.

또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그것이 당위다.

그러나 이런 의문들은 어디까지나 "역사 바로세우기"나 "호기심 해소"
차원이다.

한보에 말려든 채권은행들과 그 은행의 주주및 고객들이 10년넘게 한보의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따라서 중요한건 한보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것과 한보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채권은행들의 조속한 여신회수방안을 마련하고 한보관련업체의 피해를
조속히 보상하는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채권은행들이 주장하듯 정부보증 등 대책없는 추가자금지원도 재고해야만
한다.

아울러 한보사태로 불거진 여러가지 문제들, 예컨대 <>은행의 사금고화
<>정치실세들의 안하무인적 행동 <>은행장 1인경영체제 <>은행여신심사의
허술함 <>감독기관의 무책임 <>기업인들의 최소한 윤리성부재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책임경영체제 부재 등을 해결할수 있는 방안도 마련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한보는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금융산업은
후진성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정태수 총회장은 지난 1월 검찰에 출두할때 운동화를 신었었다.

지난 91년 수서사건때 마스크를 착용한 것과는 달랐다.

호사가들은 수서사건때의 마스크는 "입을 열지 않겠다는"는 의미였던 반면
한보때의 운동화는 "다 말할테니 열심히들 뛰어보라"는 사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아직 도망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30일간의 과정이 결국 "밀명"에 의해 종결로 갔듯이 한보 뒤처리도 누군가의
밀명을 받아야만 모두가 돌아올 모양이다.

숨가빴던 한달간은 앞으로 지루하고도 고통스런 3백일, 3천일을 예비했던
셈이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