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업계의 인력이 중소 벤처기업으로 몰린다.

대기업에서 인정받던 고급 인력들이 스스로 중소 벤처기업으로 찾아들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에서 기술을 익힌뒤 경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으로 이동하던
기존의 인재흐름과 상반되는 것이어서 관심을 끌고있다.

정보통신업계에 "인재역류"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최근의 명예퇴직 분위기와 맞물려 발생, 경기
불황속에서도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정보통신업계의 인기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룹웨어전문업체인 한국기업전산원은 최근 신입.경력사원을 공개
채용했다.

전체 응시자중 30대 대기업 출신은 45명.

이들 중에는 3~5년차의 경력소유자가 대부분이었지만 10년차 이상도
12명이나 됐다.

이 회사의 김길웅 사장은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사원들이
대거 응시, 적잖이 놀랐다"며 "벤처기업들은 인재 뽑기가 어렵다는 건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인 두인전자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종업원 1백45명중 26명 (18%)이 대기업 출신이며, 핸디소프트는
1백43명의 직원중 14명 (10%)이 대기업에서 자리를 옮겨왔다.

이밖에도 주요 벤처기업들은 전체 종업원중 10% 안팎이 대기업 출신
고급 인력이다.

인터넷.인트라넷 전문업체인 버추얼아이오시스템의 김욱 실장은
"인재역류" 현상의 대표적인 케이스.

그는 지난 94년말 삼성그룹의 한 회사를 그만두고 버추얼사에 입사했다.

삼성에서도 "잘나간다"는 그가 무명의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길때
주위에서는 만류도 많았단다.

그러나 김실장은 결코 "후회없는 선택"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정보통신업계 인재들이 벤처기업으로 몰려드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벤처기업이 훨씬 유리하다는 인식에서다.

벤처기업에서는 대기업과는 달리 자기 스스로가 프로젝트를 기획,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글과컴퓨터의 김택완 기획이사는 현대전자 출신.

그는 "전직장에서는 내능력을 발휘해도 표시가 나지 않아 자기발전의
한계를 느꼈다"며 "나의 아이디어가 회사 발전에 즉각 반영되는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의 자유스런 근무분위기도 인재를 끌어들이는 요소이다.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격식과 외형을 따지는 기업문화보다는 자유분방한
가운데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수 있는 일터가 훨씬 매력적일수 밖에 없다.

코오롱 정보통신 출신인 핸디소프트의 장금용 부장은 "젊었을때 뭔가
자유롭게 해보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로 자리를 옮겼다"고 전직 이유를
설명했다.

벤처기업들이 최근들어 연봉제 실시 등으로 보수를 크게 높인 것도
주요 요인이다.

특히 벤처기업들 사이에서 스톡옵션제 도입붐이 일면서 당장은 급여가
낮더라도 주식상장을 노리고 벤처기업으로 향하는 인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주위에서 "대단치 않은 회사에 다닌다"는 눈총을 받을때가 가장 괴롭다.

핸디소프트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에 다닐때 결혼한게 그나마 다행"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전직 직후 벤처기업의 문화에 적응치 못해 또다시 직장을
옮기는 사례도 있다.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됐더라도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도태될수
밖에 없다.

잘나가는 정보통신업계의 중소 벤처기업에서도 성공여부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능력발휘, 그리고 남다른 실적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 한우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