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5일 도쿄에서 가진 "첨단기술 전략회의"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소그룹 계열사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출사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단기적인 불황타개책으로서의 투자전략이 아니라 삼성의 미래가 달려있는
생존전략으로서 "비메모리"라는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투자확대를 통한 그룹의 사업구조 전환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비서실
기획팀)라는 그룹고위층의 지적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곧 그룹 경쟁력의 무게중심을 메모리가 아닌 비메모리로 옮겨가겠다는
21세기 삼성 전략의 밑그림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건희회장의 이번 전략회의는 지난 83년 이병철 선대회장이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이른바 "도쿄구상"에 비유된다.

삼성이 비메모리 분야를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중심은 역시 CPU 등 비메모리반도체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번 전략회의를 통해 앞으로 5년간 7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쏟아부어 비메모리를 육성키로 했다.

이는 한편으론 메모리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세계시장을
상대로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토대가 됐다.

지난 1월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신설해 진대제 대표를 사업추진
책임자로 선임한 것도 이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반면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시장구조가 수급균형에 따라 등락이 엇갈리는
등 심히 불안정한 사업구조라는 점도 결정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됐다.

지난 95년 삼성전자의 순익은 2조5천억원에 달했으나 세계시장에서
16메가D램의 가격이 급락한 지난해는 1천6백억원으로 떨어졌다.

삼성의 이같은 승부수에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비메모리반도체는 메모리와 업의 특성이 판이하다.

메모리는 소품종 대량생산인데 반해 비메모리분야는 다품종소량생산이며,
메모리는 시장 조기선점과 원가경쟁력이 중시되지만 비메모리는 대응력과
납기 다양한 스펙 등 고객서비스가 중시된다.

무엇보다 창조적인 R&D(연구개발)능력을 필요로 한다.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스피드 심플 소프트"를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점을 겨냥하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소프트경쟁력"을 어떻게 배양할
것인지가 삼성이 비메모리분야에서 메모리 못지 않는 성공을 거두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