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망명소식을 접한 기업들의 반응은 크게
세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대북경협문제의 경우 올들어 다소 개선되는 듯했던 남북관계가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남북경협은 지난해 9월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 이후 단순교역이나 일부
경공업제품의 임가공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단절돼 왔다.

그러다 올들어 잠수함사건에 대해 북한측의 사과가 있었고 지난달 하순에는
LG상사 (주)태창 동해통상 등 6개업체가 북한주민접촉 승인을 받으면서
물꼬가 트이는 듯한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황장엽 망명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업들은 일제히 그동안 진행해온
사업추진을 유보한채 사태관망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가 이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한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부단속을
더욱 강화하고 북한내 개방파들의 입지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종권 LG그룹 중국본부차장은 "북한당국자들의 반응이 잠수함사건 때보다도
더 거칠다는 느낌"이라며 남북경협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기업들은 북한측이 해외지사원 등을 대상으로 보복테러나 납치를 기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해외사업장의 안전대책을 점검토록 긴급 지시했다.

업계는 특히 북한측이 이번 사건을 납치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관련 구성진 중국한국상회사무총장(상의북경사무소)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비상연락망을 통해 서로 신변안전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기업들은 보다 장기적으로는 이번 사건이 북한의 체제붕괴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고 북한체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책
마련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재계의 북한팀 관계자는 "북한체제의 붕괴는 이미 예상돼온 사실이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로 보아 그 속도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통일과정
에서의 혼란을 극복하고 통일후 북한내에서의 사업추진방향 등에 대한 연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4일자).